로드숍 포기하는 K뷰티 주역들..."내년 줄폐점 예상"
브랜드 구조조정도 잇따라...온라인 채널 활용 '골몰'
[편집자 주]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유통 업계의 판도 변화가 뚜렷해진 한해였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감은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를 앞당기면서 소비 패턴을 완전히 바꿔놨다.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이 온라인 플랫폼 사업으로 갈아타면서 포털·이커머스와의 배송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식음료 기업들은 식문화 변화로 수요가 급증한 가정간편식과 건강식품의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 반면, 패션·뷰티 업계는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유통·식품·패션업계 지형도 변화를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구혜린 기자 = "그 많던 로드숍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올해 실적 찬바람을 맞은 화장품과 패션업계는 채널 전환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특히 동네마다 열댓개는 되던 화장품 로드숍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H&B(헬스앤뷰티)스토어로 재편되던 화장품 시장은 이제 온라인 채널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최소 3년 주기로 변하던 뷰티시장을 코로나19가 1년 만에 바꿔놨다.
불황에 가장 취약한 패션업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브랜드 구조조정이다. 화장품 업계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중심으로 채널을 조정하기도 했으나, 매출이 저조한 브랜드 자체를 접는 '사생결단'을 더해야 했다. 더불어 '라이브커머스', '자사 온라인몰' 강화 등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양판점 → 로드숍 → 온라인'...코로나가 앞당긴 화장품업계 과도기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매출 1위를 유지해오던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LG생활건강에 '왕좌'를 내줬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3조6687억원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 화장품부문과 데일리뷰티(생활용품) 매출을 합산한 수치에 근소하게 뒤쳐진다. 4분기 실적을 합산해도 순위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핌] 구혜린 기자 2020.12.24 hrgu90@newspim.com |
위기를 느낀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유산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초에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중국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니스프리 매장의 폐점 규모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국내 로드숍 직영점도 축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까지 실시하며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해 'K-뷰티' 주역들이 운영하던 오프라인 로드숍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우선 아모레퍼시픽의 자체 화장품 편집숍 아리따움은 2017년 1250여개에 이르던 가맹점이 올해 8월 말 기준 880개로 감소했다. 2017년 564개에 달했던 스킨푸드 매장 수는 작년 말 기준 68개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잇츠스킨 매장 수는 97개에서 17개로, 토니모리는 679개에서 517개로 쪼그라들었다.
이 과정에서 화장품 로드숍 가맹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올해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조정열 대표와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은 로드숍 가맹점을 방치한 이유로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이 자리에서 본사의 온라인 시프트 전략으로 직·간접적으로 가맹점이 피해를 본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실적 만회를 위한 채널 전환 속도는 빠르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아리따움의 총 매출 2773억원 중 3분의 1은 온라인몰에서 발생했다. 로드숍 전문 브랜드가 오프라인에서 올린 매출이 60%대에 불과했다. 본사의 온라인 마케팅이 과도했을 수 있으나, 그만큼 '소비자의 화장품 구매가 온라인에서 일어난다'는 증거다.
로드숍을 위협하는 H&B스토어도 과도기를 겪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올해 유일하게 가맹점을 늘렸으나 한 자릿수에 그쳤다. 롭스와 랄라블라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롯데쇼핑, GS리테일 내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화장품 편집숍이 로드숍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일었으나, 멀티 브랜드숍 자체도 온라인몰 프로모션 확대, 배달 서비스 등을 진행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중소중견 화장품 브랜드들의 경우 SNS 채널 마케팅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했지만, 주요 화장품 대기업들은 발빠른 채널 대응에 실패한 것 같다"며 "과거 화장품 양판점들이 순식간에 로드숍에 시장을 빼앗긴 것처럼 로드숍 구조조정은 더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구혜린 기자 2020.12.24 hrgu90@newspim.com |
◆"재택근무 하는데 누가 옷을 사"...'찬바람' 패션업계 체질개선 총력
패션 대기업인 삼성물산과 코오롱FnC, LF 3사는 지난해와 비교해 수백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삼성물산은 3분기까지 누적 적자 440억원, 코오롱FnC는 271억원을 기록했으며 LF만 가까스로 흑자를 냈다. 그러나 LF 역시 코람코자산신탁 덕분에 적자를 면했을 뿐, 최악의 패션 실적을 기록한 것은 마찬가지다.
분기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이랜드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월드는 지난 11월 미쏘, 로엠, 에블린, 클라비스, 더블유나인, 이앤씨 등 여성복 6개 브랜드의 매각 계획을 밝혔다. 매각처가 나타난다면 사실상 여성복 사업에서 손을 떼겠단 의미다. 이랜드월드는 새해부터 스파오와 뉴발란스 등 SPA, 스포츠 브랜드로 사업을 재편할 계획이다.
삼성물산도 아웃도어 사업에서 철수했다. 삼성물산은 지난 6월 빈폴스포츠(구 빈폴아웃도어)를 내년 2월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전국 빈폴스포츠 오프라인 107개 매장이 모두 정리된다. 또한 백화점 내 입점돼 있던 빈폴액세서리 50여개 오프라인 매장도 전면 철수됐다. 빈폴액세서리는 올 하반기부터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개편됐다.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는 대신 독특하게 활용하는 업체도 있다. LF는 최근 전 가두매장(로드숍)을 LF몰 스토어로 리뉴얼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LF몰 스토어는 O4O(Online for Offline) 개념의 매장이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주문한 의류를 LF몰 스토어에서 픽업하거나, 직접 입어보기 위해 LF몰 스토어를 방문한 뒤 구매만 온라인에서 할 수도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몰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발상의 전환을 한 셈이다.
자사 온라인몰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눈에 뛴다. 특히 패션업체 중에서도 고급화 전략을 취하고 있는 한섬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자사몰 강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더한섬닷컴은 지난 9월까지 전년 동기간 대비 67% 증가한 1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신세계인터 역시 에스아이빌리지의 매출이 역대 최초 14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 중이다.
화장품업계와 마찬가지로 판로 개척을 위해 라이브방송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는 최근 에스아이빌리지 내에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에이아이라이브'를 론칭, VIP 콘셉으로 방송을 진행 중이다. 코오롱FnC도 지난 11월 네이버쇼핑 플랫폼을 통한 라이브 방송에서 코오롱스포츠 겨울 의류를 판매해 목표 매출의 2배를 달성했다.
패션업계의 구조조정, 채널 다각화 시도는 내년에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만연해지면서 '누가 옷을 사겠느냐'라는 절망감이 내부에 스며든 한 해였다"며 "타깃 대상에게 소구할 수 있는 최적의 채널을 개발해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는 업체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hrgu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