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코로나19 감염병 천재지변" vs 업체 "약관에 없다"
강제성 없는 공정위 권고, 합의 못하면 소송으로 해결해야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8월 들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휴가 취소와 관련된 위약금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감염병에 따른 위약금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강제력이 없어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 17일까지 국내외 여행상품 및 숙박과 관련된 '계약해제·위약금' 분쟁 소비자상담은 총 1만685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7448건보다 126% 급증한 것이다.
숙박 분쟁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1월 67%, 2월 338%, 3월 141%, 4월 -38%, 5월 -22%, 6월 -24%, 7월 -31%, 8월 338%로 집계됐다. 여행상품 분쟁의 경우에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분석된다. 계약해제·위약금 분쟁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1~4월 급증했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안정세를 보인 5~7월 감소 추세로 접어든 이후 이달 들어 재확산 여파로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강한 전염성과 함께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천재지변으로 보고 불가피하게 휴가를 취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약금을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체 측은 표준약관상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이유로 계약에 따라 위약금을 부과하면서 분쟁이 빈발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는 천재지변에 따른 '부득이한 계약 취소'에 대한 면책규정이 존재하는데,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천재지변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시민 윤모(29) 씨는 "코로나19는 천재지변에 인재까지 더해진 심각한 상황 아닌가. 해외여행을 예약했는데 환불을 안 해줘서 1년 연장했다. 돈이 어딘가에 묶인 기분"이라며 "감염병이 도는 경우에는 정부에서 명확한 규정을 내려줘야 한다고 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관련 업계에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모 여행업체 관계자는 "패키지 상품은 항공권과 숙박 등 각 업체마다 여행사가 계약한 후 묶어서 하나의 기획 상품을 만들어 내는 거다"며 "고객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항공사와 호텔이 환불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약관에 따라 위약금을 요구하면 여행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감염병이 천재지변이라고 정확히 명시하고 정부의 강력한 지시에 의해 강제적으로 여행이 취소되고, 환불해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여행업체도 오히려 부담을 덜게 된다"며 "항공사와 호텔도 환불을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8·15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19일부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에 나섰다. PC방과 노래방 등 고위험 시설의 운영이 중단됐으며, 실내 50인, 실외 100인 이상이 모이는 결혼식과 행사, 모임 등도 모두 금지됐다.
특히 21일부터 서울시가 서울 전역에서 10명 이상 모이는 모든 집회를 금지시키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방역 조치에 돌입하면서, 휴가와 관련된 분쟁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분쟁을 조정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외식, 여행, 항공, 숙박 등 업종에 대해서 감염병 위약금 면책·감경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며 사적인 계약에 대해 정부 개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갈 수밖에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감염병이 천재지변에 해당되는지 업계와 소비자 단체 의견을 들어보고 가장 합리적인 안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그마저도 추상적"이라며 "케이스가 다양하고 각자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인 해결 기준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며 꼭 그대로 업체가 이행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는 행정지도에 불과하고, 사적인 계약에 대해서 제3자, 그게 국가라고 하더라도 개입하는 건 한계가 있다. 무수히 많은 분쟁에 대해 정부가 단일의 해법으로 강제하기 어렵다"며 "사법부의 영역이며, 당사자들 출석 하에 판사가 가려야 한다. 번거롭긴 해도 자율적인 합의를 끝내 못한다면 법원까지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