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의총서 의원들에 "유튜버보다 못하다" 질책
당 사무처 직원들도 "시험운영 할 만큼 했다"…공개 비판
[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정치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를 잊었다. 그 순간부터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병상 메시지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위해 8일간의 단식과 2주간의 무기한 농성을 하면서 체력이 약화돼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몸을 던져 투쟁한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결국 막지 못했다. 게다가 강경 투쟁 과정에서 당내 민심도 잃었다. 특히 황 대표의 당 운영 방식을 두고 당내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9.12.23 kilroy023@newspim.com |
황 대표의 '강경 투쟁' 일변도의 당 운영이 화근이 됐다. 최근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무기한 농성에 나서면서 한국당 의원들은 상임위원회 별로, 지역별로 조를 나눠 함께 농성에 나섰다.
주간조와 야간조, 철야조로 번갈아 가며 투쟁에 나서다 보니 지역 활동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한 수도권 지역 의원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연말이 겹치면 지역 활동이 정말 중요해지는 때"라며 "당이 투쟁을 하는 점은 이해 하지만 총선을 앞둔 연말에 지역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니 난감하긴 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황 대표가 중앙당 차원의 투쟁 활동을 굉장히 중시하다 보니 의원들로서는 눈치가 보여 지역에 내려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한국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황 대표는 의원들의 '투쟁력'을 지적한 바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 의총에서 황 대표가 의원들의 투쟁력과 투쟁 태도를 지적하면서 '유튜버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며 "그 말을 들은 한국당 의원들이 상당한 모욕감을 느끼며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황 대표의 농성 현장을 매일같이 찾는 보수 유튜버들과 비교하며 의원들의 태도를 질책한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한국당 의원들을 만나 들어보면 단순히 이번 건 뿐 아니라 지난번 원내대표 경선 때부터 이미 황 대표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며 "원내대표 경선 전날까지도 일부 의원들은 '경선을 치르면 황 대표 분명 깨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친황(黃)'계로 분류되는 유기준 의원은 가장 적은표를 얻은 바 있다.
한국당 한 초선 의원도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불허의 건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졌다"며 "의원들의 고유 권한을 무시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로텐더홀에 위치한 농성장에 자리하고 있다. 2019.12.13 kilroy023@newspim.com |
이같은 불만은 비단 의원들 사이에서만 나오는 얘기는 아니다. 사무처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원내대표 경선 당시를 회고하며 "그런 결정을 했을때 당 내의 여론이나 국민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어떨지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모르겠다"며 "당을 너무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건용 한국당 사무처 조직팀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비판의 글을 남겼다.
이 팀장은 "지금 당의 방향이 무엇을 위한 길인가. 나라를 위한 것인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을 위한 것인가"라며 "지난 1년 안 되는 시간 동안 계속되는 장외집회로 진정 지지율을 올리고 나라를 바로잡고 총선 승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당은 마치 검사동일체 조직인 것 마냥 굴러가고 있다"며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무서운 분위기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서도 과정도 모르는 결정을 묵묵히 따라야만 하는 서글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쯤 되면 시험 운영 할만큼 했고 브레이크를 걸 때가 됐다"며 "당은 우리의 것도, 대표의 것도, 의원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고 존재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