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경찰, 현행범체포동의서 사실과 다르게 작성"
경찰청장에 현행범 체포 관련 범죄수사규칙 개정 권고
사건 당시 지구대장 등 직원에게는 '주의' 조치 권고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경찰이 ‘버닝썬 폭행 사건’ 당시 김상교씨를 부당하게 체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경찰이 김 씨에게 미란다원칙조차 고지하지 않고 현행범인체포서까지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강남 클럽 버닝썬 폭행피해 신고자인 김 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미란다원칙 고지 및 의료조치 미흡 등 위법과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김 씨의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23일 "아들이 버닝썬 클럽에서 폭행을 당했는데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지구대에서도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직접 진정을 내 이뤄졌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버닝썬 사태'의 최초 신고자 김상교씨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고소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9.03.19 leehs@newspim.com |
인권위는 이번 조사에서 △경찰관들이 피해자와 클럽 직원 간의 실랑이를 보고도 곧바로 하차해 제지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클럽 직원들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신고내용을 청취해 2차 싸움 발생 △신고자의 피해 진술을 충분히 청취하거나 이를 직접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조치 부족 △피해자의 항의에 대해 경찰관 또한 감정적으로 대응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경찰, 버닝썬에 유리하게 공문서 작성
부당 체포와 관련한 김 씨의 주장에 대해 경찰이 앞서 반박한 내용도 일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김 씨가 흥분해 클럽 직원들에게 위협적으로 달려들고 경찰관들에게도 시비를 걸어 진정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며 “계속 행패를 부릴 경우, 폭행 등의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피해자가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아 체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가 출동 경찰관들의 바디캠과 112신고 사건처리표, 인근 CCTV 등을 확인한 결과, 김 씨가 클럽 앞에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클럽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인 것은 약 2분이었고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것도 한 차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현행범인체포서에 ‘(김 씨가)20여 분간 클럽 보안업무를 방해했고 경찰관에게 수많은 욕설을 한 것은 물론 피해자가 폭행 가해자(버닝썬 이사 장모 씨)를 폭행했다’고 기재했다.
인권위는 출동한 경찰관이 김 씨를 갑자기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 현장 도착 후 3분 만에 체포한 것을 두고는 현행범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당시 김 씨에게 “진정하라”고 몇 차례 말했으나 이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체포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지 않았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한 차례 욕설을 하며 20여초 간 경찰에게 항의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김 씨에게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사실만 설명하고 미란다원칙은 고지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당시 현행범 체포에 대해 경찰의 주장을 폭넓게 인정하더라도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으로 피해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병원 보내달라”..경찰 ‘후송 거부’
클럽 내 폭행으로 갈비뼈 부상을 입은 김 씨가 지구대에서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를 거부한 사실도 확인됐다.
앞서 김 씨는 조사를 받은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서 “클럽에서 당한 폭행으로 갈비뼈 통증을 호소했으나 경찰이 후송해주지 않았다”며 경찰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가 스스로 후송을 거부했고 119 구급대원도 응급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며 “김 씨가 서류에 침을 뱉어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억제를 위해 병원에 후송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마약 투약 및 유통 의혹을 받는 이문호 버닝썬 클럽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2019.03.19 mironj19@newspim.com |
하지만 인권위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음에도 경찰이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병원 후송을 부당하게 거부한 것은 ‘건강권 침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인권위는 그 근거로 △피해자에게 상당한 부상이 있다는 사실을 경찰이 충분히 인지했고 △피해자가 통증을 호소하고 피해자의 보호자가 지구대에 방문해 피해자의 치료를 요청한 것은 물론 △119 구급대원이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혔다는 점을 들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경찰청장에게는 현행범 체포 시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범죄수사규칙에 반영하고 부상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편의에 따라 장시간 지구대에 인치하는 사례가 없도록 업무 관행을 개선하라고 이날 권고했다.
또 강남경찰서장에게는 사건 당시 지구대 책임자급 경찰관들에 대해 주의 조치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 경찰관들에 대해 직무 교육을 실시할 것을 각각 권고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