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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업 역사 다시 쓴다. 중국 재계를 뒤흔든 동명이인 두 명의 장융

기사입력 : 2018년09월28일 17:11

최종수정 : 2018년10월01일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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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를 거부하는 운명 개척론자,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 상하이 엘리트 알리바바 CEO 장융

[서울=뉴스핌] 김은주 기자 = '시가총액 900억 홍콩달러를 넘는 훠궈 외식업체 하이디라오 창업자', '세계적인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후계자'. 각각 장융(張勇)이라는 동명이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9월 전자(前者) 장융은 하이디라오 홍콩증시 상장으로, 후자(後者) 장융은 마윈의 공식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중국 재계는 물론 세계 투자업계에 화제를 불러모았다. 각각 1974년생, 1972년생인 이들 두 명의 장융은 흙수저와 엘리트 출신 경영인으로서 닮은 듯하면서 다른 점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 세계적인 중국 훠궈 업체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운명개척론자

중국 대표 외식업체 하이디라오 [사진 = 바이두]

2017년 기준 341개 영업점, 연간 방문 고객 수 1억 명, 연간 매출 106억 위안 달성.

명실상부 중국 대표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는 9월 26일 성공적으로 홍콩 증시에 입성해 시가총액 940억 홍콩달러의 상장기업이 됐다. 

이러한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의 창업 고군분투 일대기가 숨어있다.

상하이 재경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장융과는 다르게 서민출신 하이디라오 장융은 기술직업 고등학교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별다른 재능이 없었던 그는 중학교 졸업 이후 기술학교에 진학한다. 이후 1988년 쓰촨 국영 트랙터 공장에 기술자로 취직했다.   

기술자로 평범한 삶을 살 것 같았으나 장융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운명개척론자로서 자기 인생을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나섰다. 그가 기술자로 일하던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 열기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수 많은 벼락부자들이 탄생했다.

누구는 거위를 구워 팔아 쉽게 떼돈을 버는데, 자기만 90위안(약 1만 5000원) 정도의 쥐꼬리만한 월급만 받는 월급쟁이에 안주 할 수 없었다. 장융은 결국 창업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한다.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 [사진 = 바이두]

창업 열풍에 호기롭게 뛰어들긴 했으나, 세 차례의 연이은 실패를 맛봐야 했다. 첫 번째 창업인 복권 사업에서는 사기를 당했고, 다음으로 뛰어든 주유소 사업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세 번째로 도전한 마라탕(중국 음식) 사업에서는 꽤 많은 돈을 벌긴 했으나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자 가방 끈이 짧은 처지를 탓하기도 했지만,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났다. 1994년 자신의 고향 쓰촨성에 조촐하게 탁자 4개를 놓고 훠궈 전문점을 열었다. 하지만 요식업에 문외한이었던 장융은 음식 맛보다 고객 서비스에 치중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던 상황에서 세심한 고객 서비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료로 구두를 닦아주고, 매니큐어를 해주는 등 고객을 왕처럼 모시는 서비스가 통한 것이다.

하이디라오 창업자 장융은 학력, 집안 등 변변한 뒷배경 없이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몸값 600억 위안에 달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요식업계의 스타트업 전설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 마윈의 후계자 중국판 아마존 알리바바 CEO 장융, 상하이 엘리트 태생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 [사진 = 바이두]

같은 9월 중국 재계의 또 다른 장융도 중국과 세계 투자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2019년 9월 10일 회장직을 후계자 장융에게 넘겨주고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것.

마윈 회장의 후계자 장융은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 행사, 신소매(리테일) 전략 등 굵직한 사업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에게도 작은 시련은 있었다.  

상하이 재경대학에서 재무학을 전공한 장융은 당시 상하이 만국증권과 같은 일류금융회사에 취업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진로를 바꿔 영국계 은행인 베어링스 은행에 취업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베이링스 본부 역시 돌연 문을 닫아 금융회사 취업에 좌절을 맞본다.

이후 장융은 운좋게 세계 최대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에 들어간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엔론 분식회계 사건으로 아서 앤더슨은 해체되고, 중국 사업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로 넘어간다. 그는 PwC에서 임원으로 일하게 된다.

세계적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사진 = 바이두]

2005년 중국 게임업체 샨다로 자리를 옮겨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하던 장융은 어느 날 한 헤드헌터로부터 그의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바로 알리바바 그룹 합류 제안이었다.

2006년 당시 알리바바의 순이익은 2억 위안에 불과했다. 이는 2006년 그가 있던 샨다의 4분기 순이익 670억 위안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장융은 자신의 본거지인 상하이를 떠나 알리바바가 위치한 항저우로 떠난다. 오로지 미래 성장 가능성만을 보고 알리바바에 합류를 결정한 것. 합류하자마자 장융은 항저우에 있는 한 호텔에 장기간 머물며 알리바바의 신화 창조에 몰두한다. 2013년 알리바바 그룹의 COO를 거쳐, 2015년 CEO에 오른다. 광군제 행사 등 그룹 내 핵심사업들을 도맡아 능력을 인정받았다.  

알리바바 그룹 회장 마윈과 CEO 장융 [사진 = 바이두]

2019년 알리바바 회장 마윈이 이사회 주석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함에 따라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과 단호한 리더십을 지닌 장융이 마윈의 후계자라는 꼬리를 떼고, 어떻게 알리바바의 또 다른 신화를 일궈나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unjook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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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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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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