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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20세기 건축계의 위대한 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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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35)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한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밝히시오”.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입니다.” 재판관이 어떻게 그런 답변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소이다.” 그 남자가 바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이다.

라이트는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이 지대했던 건축가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 거장 건축가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축 설계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인사로나 작품세계로나 시끌벅적한 논쟁과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2000년 미국건축가협회에서 20세기 10대 건축물을 선정했다. 그런데 그중 4개가 라이트의 건축물이었다. 그는 또 오늘날 시카고시가 건축의 도시로 찬사를 받게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871년 대화재로 폐허가 된 시카고 시의 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시카고를 현대건축물의 보고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사람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는 1867년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위스콘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가난한 집안이라 학비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이로 인한 불화로 아버지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라이트는 고학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1887년 시카고로 가서 근대건축의 선구자 루이스 설리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배웠다. 루이스 설리번은 현대 디자인에서 명언으로 평가받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라이트는 1889년 시카고 근교의 오크파크(Oak Park)에 자신의 집을 짓고 건축가로서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는 여기서 첫 번째 아내와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이 집은 이후로 세 번의 증축을 거쳐 홈 앤드 스튜디오(Home and Studio)로 거듭난다.
이 시기 라이트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건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해 1894년에는 독립사무소를 열어 본격적인 건축사로서의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루이스 설리번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아가 ‘시카고파’를 이끌면서 미국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시카고파는 1880년대 초~190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 활약한 근대 건축가 그룹을 말하는데, 치장을 중시하던 기존 건축양식을 타파하고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철골구조와 넓은 유리창을 특징으로 하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한편, 라이트는 건축가로서 전성기를 보이던 1911년 기존의 오크파크 저택과 조강지처 부인을 버리고 위스콘신에 내연녀와 함께 살 새로운 저택 《탈리에신 이스트》을 지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애리조나에 《탈리에신 웨스트》을 세웠다. 그런 뒤 이 두 곳에서 제자와 함께 기거하면서 신예 건축가 양성에 힘썼다.

라이트는 일본과도 인연이 깊다. 1893년 콜럼버스의 미국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은 호오덴 사원을 본뜬 전시관을 세웠는데, 라이트는 이때 처음 일본 전통건축을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후 일본 건축과 예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라이트는 1906년 일본을 방문하였는데 일본의 예술과 동양철학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에는 동양의 사상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실제로 《동경 제국호텔》과 《자유학원》을 설계하기도 했다.
동경제국호텔은 내진과 방화에 대비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설계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예정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다. 그런데 호텔이 완공된 다음해인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동경의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거나 화재에 휩싸였다. 그러나 제국호텔은 멀쩡했다. 이것은 건축가 라이트의 명성을 또 한 번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을 관찰하라. 자연을 사랑하라. 자연과 가까이 하라. 그런다면 자연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라이트는 이세상의 모든 구성물은 서로 내면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으며 고립된 것은 없다고 보는 세계관 즉 ‘유기적 세계관(有機的 世界觀)’에 바탕을 둔 건축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주변의 자연적 환경과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건물은 상자와 같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실내와 외부 환경이 서로 넘나드는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기본원리에 충실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이트는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르코르뷔지에와 쌍벽을 이루며 비교된다. 르코르뷔지에는 도시와 기계를 찬양하며 대량생산에 의한 효율을 주장하면서 이후 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반면 라이트는 자연적인 건축과 환경적인 건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라이트의 자연주의 건축철학이 가장 잘 반영되어 나타난 건물은 그의 후원자였던 에드거 카프만의 여름 별장인 《낙수장(Falling Water)》이다. 1939년 완성된 이 저택은 폭포 위에 지어져 자연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위대한 건축으로 손꼽히는 이 건축물은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 근교에 위치한 여름 별장 ‘낙수장(Falling water)’ 전경 <사진=이철환>

그러나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뉴욕에 소재한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라 하겠다. 건축주인 구겐하임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술관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라이트는 그 요청을 훨씬 뛰어넘는 건축물로 화답했다. 미술관 건물 전체의 모습은 아래보다 상부가 넓은 달팽이 모양 내지 원통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라이트는 기존 맨하튼의 직선적인 건축 형태나 미술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모두 깨트려 놓았다. 그동안 건축계에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평평한 바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건물 전체가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 없이 이어진다. 바닥과 벽, 천장이 함께 흘러가는 모양을 통해 공간과 구조의 유기적인 흐름을 추구한 것이다. 결국 라이트는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곡선과 연속적인 공간을 실현함으로써 향후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사후 반년 뒤에 완공되었다.
그런데 이 구겐하임 미술관 본관 이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미술관 분관이 있다. 다름 아닌 스페인 빌바오 시에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프리츠크 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여타 다른 미술관과는 달리 전시된 작품보다도 미술관 건물이 오히려 더 유명하다. 미술관 자체가 설치미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의 존재만으로 쇠락해가던 공업도시 빌바오가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모하였다. 여기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라이트는 40대에 이미 건축가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며 건축주였던 친구 부인과의 스캔들로 인해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이후 건축가로서의 활동도 뜸해지고 20년 가까이 잊힌 건축가가 되어 갔다. 그래서 건축가로서 황금기라 할 수 있는 50대를 거의 공백기로 보냈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 어려운 시기를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연마의 시간으로 삼았다. 마침내 그는 60세 이후 세기적 걸작인 《낙수장》을 발표함으로써 화려하게 다시 일어섰다. 그로부터 연이어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걸작들을 발표하였다.

라이트의 사생활은 한마디로 자유분방했다. 바람둥이 기질과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그는 쪼들리는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어 비싼 옷을 사 입고 고급 자동차를 몰면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그의 사생활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고객들이 그와의 비즈니스를 회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라이트는 나이 42세가 되던 1909년, 20년 동안 같이 살며 6명의 자녀를 낳아준 조강지처 캐터린을 버리고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프랑스로 건너가서 자신의 고객인 사람 아내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이 내연녀와 함께 버젓이 고향인 위스콘신 스프링그린으로 돌아와서 둘이서 살 개인주택 겸 작업실을 지었다. 그 주택이 유명한 《탈리에신(Taliesin)》이다.
당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결혼은 인간의 굴레가 아니다. 사람이 개인적 자유와 결혼 생활의 노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 간통은 세상과 맞서는 진실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위선적인 사회관습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사생활에 얽힌 스캔들로 인해 주변의 비난을 받았고, 마침내 비극적인 사건까지 발생한다. 1914년, 그의 주택 겸 작업실인 《탈리에신》 관리를 맡고 있던 남자가 라이트의 내연녀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라이트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곧 바로 탈리에신 복구 작업에 나선다. 이 때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맡은 일이 도쿄의 제국호텔이다.
그리고 제국호텔이 완공되던 1922년 그는 첫 부인과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아내를 맞게 된다. 그런데 1925년 기껏 복구한 탈리에신 주택이 또다시 불타 사라진다. 화재 당시 이웃 주민들은 화재진압을 돕기는커녕 라이트가 수집해 놓은 동양의 예술품들을 훔쳐갔는데, 그만큼 주변의 미움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와도 결혼생활 5년 만에 이혼하게 된다. 이후 동유럽의 귀족 출신 여인을 세 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모처럼 삶의 안정을 찾게 되고 이후 죽는 날까지 건축 설계 작업을 계속했다.
한평생을 논란 속에서 살았던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걸작들을 남긴 채 92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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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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