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마오쩌둥 서거 50주년 맞아 중국 청년들이 다시 찾았다
- 청년들은 취업난과 집값 부담 속 마오 시대를 동경했다
- 공산당은 마오 붐이 체제 지지와 불만 확산을 함께 낳는다고 봤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죽어서 영향력이 더 커지는 정신적 버팀목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1976년 9월 9일, 중국 현대사의 위인 마오쩌둥(마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올해로 딱 반세기가 흘렀다.
미국에 조지 워싱턴이 있다면 중국에는 마오쩌둥이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혁명의 상징이자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다. 건국의 주역인 두 위인은 나란히 각 나라 법정통화 최고액권의 지폐 인물에 올라 있다.
마오쩌둥이 서거한 지 반세기가 넘은 요즘 중국 청년들은 마치 무슨 구원이라도 얻을 것처럼 마오쩌둥을 다시 찾고 있다. 마오의 책을 읽고, 그의 어록을 인용하고, 그의 사상에서 삶의 답을 구한다. 일부 젊은이들에게 마오는 역사책 속의 위인이 아니라 현실의 고단함에 위안을 주는 정신적 버팀목인 것 같다.
왜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지금 마오를 찾을까. 한껏 눈높이만 높아졌을 뿐, 중국 젊은 세대들에게 현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이다. '내권(内卷)'이란 살인적인 경쟁이 삶을 피폐하게 하고, 아예 자포자기식 삶을 추구하는 '탕핑(躺平)'은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2023년 6월 중국의 16~24세 도시 청년 실업률은 21.3%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고용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부모 세대만큼, 아니 그 이상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빈부 격차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청년들은 바로 이 때문에 과거 마오 시대를 동경한다. 그들의 기억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악몽에 있지 않다.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권(内卷) 경쟁'이 없고, 집과 직장은 때가 되면 배급으로 돌아왔던 시절이 그립다. '아, 옛날이여~' 같은 자조적 탄성이 절로 나올 법하다.
"하늘에서 그분의 영혼이 우리와 같은 젊은 학생들을 축복하고, 우리가 이상을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반세기 전 세상을 떠난 혁명가에게 청년들이 구원을 빌고 있다. 9월 9일 홍콩 매체 SCMP는 인터넷 SNS의 글을 인용, 마오쩌둥을 마치 젊은 세대를 구원할 종교적 선지자처럼 묘사하는 글까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치부할 일도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은 신앙이며, 마오쩌둥은 신앙의 결정체다. 마오는 신중국을 세운 '절대자'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과오와도 연결된 인물이다.
마오가 신중국의 창업의 지도자라면 오늘날 정치인들은 모두 수성의 지도자다. 그는 중국이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강국으로 전환하는 데 기초를 닦은 전략가다. 중국의 원자폭탄·수소폭탄과 인공위성 개발을 상징하는 '양탄일성(兩彈一星)'을 완성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중국이 독자 노선을 취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 사회주의 연구가 중 어떤 이는 "오늘날 중국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힘도 마오에게서 나왔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미·중 대결이라는 거대한 판 자체를 마오가 이미 설계해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미·중 전략적 패권 경쟁이 격화할 때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오쩌둥의 '강대강의 미국 전략'이 다시 소환된다.
마오는 죽었지만 사람들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 도시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서 있고, 기념관에는 사람들이 몰려간다. 초상화가 새겨진 기념품과 출판물, 컵과 배지, 미니어처 조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은 공산당의 성지나 마찬가지다. 대약진 경제는 실패했지만 사후 '마오경제'는 인민들에게 생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마오를 추종하고 사회적으로 마오 붐이 고조되는 것은 한편으론 공산당에게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순히 마오의 사상을 추종해서라기보다 마오쩌둥을 통해 현재의 삶에서 부족한 뭔가를 갈급하는 경향 때문이다.
평등과 안정된 일자리, 주거에 대한 희망을 찾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라면 공산당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것은 마오쩌둥과 그의 사상에 대한 단순 지지와 추종을 넘어 현실 삶의 부조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삶은 여전히 팍팍할까. 나의 미래는…' . 역사를 거슬러 갈것 없이 신중국 현대사도 민생의 고통이 정치 불안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정치 자유화 요구와 또 다른 영역인 민생의 고달픔이 도화선이 됐다. 높은 물가와 인플레이션, 부패, 사회적 불평등과 개혁에 대한 불만이 주요원인들이다.
오늘날 중국은 경제 규모도, 국민의 생활 수준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괄목상대해졌다. 하지만 의식주가 풍요로워질수록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다. 노력해도 내일이 달라지지 않고, 불균형만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게 청년들의 생각이다. 마오쩌둥을 향한 향수와 '탕핑'이 젊은 세대들에게 파고든 이유다.
어쩌면 중국 공산당은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마오쩌둥을 내세우면 국가 내부통합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의 기반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마오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다 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을 통해 성장한 오늘날 중국 사회 모순과 마오(마오쩌둥)주의 간의 간극이 동시에 부각된다.
언젠가 마오쩌둥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중국 지인은 마오는 현대 중국 정치에서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다뤄서는 곤란한 '뜨거운 감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산당 신앙의 집적체이면서 동시에 사회 대중의 불만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생전 문화혁명에서도 그랬듯, 체제의 정당성을 받쳐 주는 인물이면서 거꾸로 체제에 질문을 던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 시대가 종식된 지 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 일부 청년들은 마오쩌둥을 다시 소환했다. 그들은 마오에게 잃어버린 평등, 안정된 일자리, 감당할 수 있는 집값,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묻고 있다. 청년들이 마오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오늘의 중국 공산당이 내놓아야 할 것이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베이징 특파원 c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