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영끌족 매도 압박 거세질 것"
전세퇴거자금 대출도 1억원으로 묶여
깡통전세 속출 경고…월세화 가속 가능성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다주택자를 정조준하면서, 대출에 의존해 온 임대인의 주택 처분 압박이 한층 커지고 있다.
매매시장은 단기적으로 매물 출회 확대에 따른 가격 조정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퇴거자금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서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진 임대인들이 보증금 반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 현상과 함께,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는 등 임대차 시장 전반의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 다주택자 주담대 만기 연장 금지…가계부채 총량 관리 고삐
1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통해 부동산 대출 전반에 고강도 규제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가격 조정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대출 총량관리 목표를 지난해 실적보다 축소된 1.5%로 설정해 가계부채를 빠르게 줄여나갈 방침이다. 궁극적으로는 2030년까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전년도 1.7%보다 낮은 1.5%로 설정하고, 주담대 관리 기준과 월별·분기별 목표를 신설해 연말 대출 절벽 현상을 완화한다.
핵심은 다주택자 주담대 만기 연장 금지다. 오는 17일부터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개인과 임대사업자는 수도권 및 규제지역 아파트 담보대출의 만기를 원칙적으로 연장할 수 없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기존 계약 종료 후 1개월까지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나 계약 종료까지 4개월 미만 남은 주택에 한해 적용한다.
2021년 이후 실행된 사업자대출을 주택 구입 등에 유용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대출을 즉각 회수하고 수사기관에 통보한다. 적발 횟수에 따라 최대 10년간 전 금융권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부동산 정책대출 비중은 현행 30%에서 20% 수준으로 축소해 2030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80%로 하향 안정화할 계획이다.
상호금융권 전반의 총량 규제를 강화한다. 기존에 자율 규제로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만 제한했던 P2P 대출에도 이달 2일부터 금융권과 동일한 LTV 규제 및 대출 한도를 적용해 우회 대출 경로를 차단한다.
◆ "다주택자 버티기 끝났다"…쏟아지는 매물 압박
정부의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라 다주택자들의 돈줄이 전방위로 막히면서 부동산 시장이 크게 출렁일 전망이다. 특히 주담대 만기 연장 금지는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유동성을 원천 차단해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끌어낼 핵심 조치로 평가된다.
그동안 대출을 활용해 버티기에 들어갔던 다주택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원금을 일시 상환하거나 주택을 매각해야 하는 '벼랑 끝'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대출 억제를 넘어 다주택자의 레버리지 축소(디레버리징)를 강제하는 강력한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단편적인 대출 제한이 아닌 동시다발적 조치로 부동산 시장에 중장기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만기 연장이 안 되면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데, 고금리 상황에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매물이 추가적으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팀장 역시 "레버리지 기반의 다주택 보유를 점진적으로 제한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까지 제한하면서 보유를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 것이 핵심"이라며 "투자 목적의 다주택 보유를 점차 어렵게 만드는 정책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5월 9일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다. 전세 낀 매매(갭투자) 등으로 현금 유동성이 마른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다주택자들을 중심으로 단기 급매물이 쏟아질 확률이 높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대출 만기 시 연장 또는 대환으로 다주택 보유를 지속하던 이들이 향후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 현금 상환 또는 매각 부담이 커지며 차입을 최소화하거나 보유 주택 수를 줄여야 하게 됐다"며 "갭투자로 여러 채 보유해 현금 여력이 약한 레버리지 투자자, 대출 만기 일시상환 비중이 높은 자는 매도 압박이 커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 지역별 양극화 뚜렷…수도권 외곽 타격 클 듯
다주택자들의 우회 경로까지 철저히 점검하고 차단하면서 자금 조달 장벽이 전반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대출 규제의 파급력은 지역별로 온도 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외곽 지역은 이번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가산금리 인상과 대출 한도 축소가 맞물려 매수 심리가 꺾이는 가운데 다주택자 매물까지 겹치면서 가격 하방 압력이 거세질 확률이 높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대출 한도 축소와 가산금리 인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매수 접근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며 "다주택자 매물 공급이 늘어나는 시점에 매수 자금 조달 여건이 좁아지는 수급 구도가 형성될 수 있으며, 대출 의존도가 높은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 가격 조정 압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강남권 핵심지나 초고가 시장은 대출 차단의 영향으로 거래 자체가 줄어들며 짙은 관망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정책 금융 활용이 가능한 중저가 단지 위주로 실수요가 몰리며 시장을 견인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우회 대출이 차단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초고가 시장이나 강남권 중심으로 당분간 가격 조정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상대적으로 대출규제로부터 자유롭고 정책대출 활용도가 높은 15억원 이하, 특히 10억원 이하의 지역의 경우 상대적으로 매물이 적게 나오는 동시에 실수요 유입이 꾸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부작용 우려도…"역전세·월세화 대비해야"
매매시장 안정화라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임대차 시장에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촘촘해진 대출 규제가 임대인의 자금줄을 강하게 조이면서 세입자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전세퇴거자금 대출 한도가 1억원으로 묶인 점이 큰 뇌관으로 꼽힌다. 수억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 차액을 1억원으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임대인을 중심으로 '역전세발 깡통전세'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
양 위원은 "수도권 전세가가 이미 수억원대인 현실에서 1억원으로는 보증금 차액 보전이 불가능하다"며 "만기 연장 제한과 대출 한도 규제가 맞물리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임대인을 중심으로 '역전세발 금융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입자가 있는 매물의 경우 잔여 임대차 기간이 4개월 미만일 때만 거래를 허용해 갭투자자들의 입주 지연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올 하반기 도입이 검토되는 전세대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까지 시행되면 서민 임차인들이 반강제적으로 월세 시장으로 내몰리는 월세화 현상이 가속할 것이란 경고음이 울린다.
함 랩장은 "이번 조치는 아파트 전세매물 축소와 월세화를 부를 수 있어 매매시장 안정 효과와 달리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는 다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연립,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다주택자는 이번 대출 회수책에서 제외했으나 임차시장의 충격 완충일 뿐 전세 매물 감소에는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남 연구원도 향후 정책 방향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전세대출에 대한 DSR 적용 확대 여부"라며 "전세대출마저 대출 한도 규제에 묶이게 될 경우, 전세 수요가 반강제적으로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월세화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