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길어질수록 신흥국 타격
에너지·식량 수입 신흥국 불리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촉발한 중동 위기 속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새롭게 주목하는 키워드로 'TACO'가 급부상했다.
이른바 '트럼프는 늘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이라는 의미의 용어가 아니다. 로이터는 관세(Tariffs)와 인공지능(AI), 신용(Credit), 석유(Oil) 등 네 가지 변수를 금융시장의 복합 리스크로 지목했다.
AI 도구를 이용해 투자은행(IB)과 국제 기구, 싱크탱크의 보고서를 심층 분석한 결과 TACO로 지칭되는 네 가지 축은 특히 신흥국의 숨통을 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Tariffs)의 축은 이미 전쟁 이전부터 신흥국에 장기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기존의 대중 고율 관세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 주요국 전반을 겨냥한 무역 마찰에도 불을 붙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정학 갈등과 안보를 명분으로 한 무역조치가 팬데믹 이후 구조적 추세가 됐다"며 "이란 전쟁을 계기로 중동발 공급망 리스크를 이유로 한 추가 관세·비관세 장벽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세와 규제 장벽은 중국부터 동남아, 중남미 제조업 수출국의 교역량과 마진을 갉아먹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후발 신흥국이 올라갈 사다리를 더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 축은 자본과 전력을 빨아들이는 새로운 유형의 '그림자 긴축'으로 작동한다고 싱크탱크는 지적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다수의 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약 415TWh에서 2026년 500TWh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고, 일부 분석은 2030년까지 AI·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전력 수요의 20%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CNN 비즈니스와 미국 전력 연구기관들은 미국과 유럽 빅테크가 AI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는 사이 글로벌 자금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신흥국 채권과 주식에서 선진국 기술주와 투자등급 채권으로 이동하고, 결과적으로 AI 슈퍼사이클이 선진국에 성장 모멘텀을 제공하지만 신흥국에는 자본과 전력이 빠져나가는 숨은 긴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용(Credit)의 축은 이란 전쟁 이후 더욱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 분쟁이 신흥국의 신용 위험을 새롭게 키우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에 크게 의존하면서 이미 높은 부채와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국가들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과 이집트, 케냐, 튀르키예 등은 국제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고 부담이 커졌고, 외화표시 국채 스프레드는 다시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ING를 포함한 IB들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글로벌 초저금리 환경에서 신흥국 기업과 정부의 프라이빗 크레딧 및 레버리지론이 크게 늘어났고, 이제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에너지와 관세, AI 경쟁까지 겹치면서 차환 비용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로이터는 "전쟁과 AI, 크레딧 공포가 한꺼번에 시장 균열을 키우고 있다"며 신흥국 하이일드 채권과 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유동성이 빠르게 말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신용 환경 악화는 신흥국 은행 시스템과 기업 투자, 고용에 연쇄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석유(Oil)의 축은 TACO 중 가장 직관적인 충격원이다. 미·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석유·가스 인프라가 위협받는 가운데 IEA는 이번 사태가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석유시장 위기"라고 평가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단기간에 10% 이상 급등해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이란이 해협을 부분 봉쇄할 경우 120~150달러까지의 피크가 거론된다.
BBC와 뉴욕타임스는 유가 상승이 각국 소비자 물가와 운송·비료·식량 가격에 연쇄적인 충격을 주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와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에서 가계 실질소득과 사회 불안을 동시에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ING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유가 10% 상승이 아시아와 중동 일부 수입국의 물가를 0.2~0.5%포인트가량 끌어올릴 수 있고,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에너지 보조금이 큰 신흥국에서 재정 부담을 키우고, 경상수지 악화와 통화 가치 하락, 대외 차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신용 축의 리스크를 다시 증폭시킨다.
이들 네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신흥국 경제는 '어디를 막아도 다른 곳이 터지는' 다중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싱크탱크는 지적한다.
ING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컨센서스 트레이드였던 '달러 약세-이머징마켓 랠리'가 중동 전쟁으로 뒤집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