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도대체 누가 그를 이길까할만큼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강했다. 세계 2위 왕즈이(중국)에 10연승을 거둘 정도로 코트를 완벽하게 지배해왔다. 그런 안세영이 한국시간으로 9일 새벽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왕즈이에게 게임 스코어 0-2로 완패했다. 2인자 왕즈이가 마침내 10연패 사슬을 끊고 '안세영 포비아'에서 벗어났다.

이날 왕즈이는 코트 중앙을 향해 셔틀콕을 집중시키는 전술로 안세영의 대각 공격 루트를 차단했다. 복식에서 주로 쓰는 드라이브·푸시를 단식에 과감히 끌어온 것. 셔틀을 빠르게 누르고 낮게 깔아 안세영 특유의 긴 랠리와 각도 싸움을 봉인한 것도 주효했다. 체력도 완벽했다. 중국 대표팀 내 800m 육상 기록 1위를 자랑하는 왕즈이의 '강철 체력'은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유지하게 했고, 오히려 안세영이 후반으로 갈수록 라인 아웃·네트 미스를 연발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중국 매체조차 "이번 전술이 다음에도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선을 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세영이 '디버그(debug)의 신'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IT 용어 디버그(debug)'는 상대에게 들킨 허점을 곧바로 수정해 다음 대회에선 같은 방식이 잘 통하지 않게 만드는 복기 능력을 가리킨다. 안세영은 경기 후 "실수가 너무 많았고, 실수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이 많았다"며 패인을 정확히 짚었고 "진 것이 아니라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배움을 통해 다시는 지지 않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패배 과정을 데이터로 삼아 곧바로 업데이트하는 스타일을 그녀 스스로 확인해줬다.
다음 격돌은 전술·멘털·체력에서 모두 재조정된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왕즈이는 이번 성공 경험을 토대로 중앙 집중–드라이브·푸시–롱 헤어핀 패턴을 기본 틀로 가져가되 안세영이 준비해 올 카운터를 대비해 변형 패턴을 추가해야 한다. 안세영도 왕즈이가 줄인 수비 반경을 다시 넓히기 위한 코스 조합과 초반부터 승부를 보는 패턴 변환을 시도할 것이다.

멘털 싸움에서도 전환점을 맞았다. 10연패를 끊은 왕즈이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지만 동시에 다시 부담도 짊어졌다.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라 '또 이겨야 하는 선수'가 된 것이다. 반면 안세영은 긴 연승과 기록 부담에서 일단 해방됐다. "오히려 고맙다. 계속해서 열심히 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강력해진 맞수의 성장은 집중력과 동기 부여 측면에서 강한 자극이다. 나달이 조코비치에게, 호날두가 메시에게 그랬듯 왕즈이는 앞으로 안세영의 커리어를 더욱 강화시킬 '선의의 라이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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