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졌다. '배드민턴의 윔블던' 전영오픈 2연패 문턱에서 왕즈이(중국)에게 패했다.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삼성생명)이 9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열린 2026 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2위 왕즈이(중국)에게 0-2(15-21, 19-21)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난 2023·2025년에 이어 한국 선수 최초 전영오픈 단식 2연패를 노린 도전은 결승 문턱에서 좌절됐다. 이 패배로 안세영의 공식전 36연승도 멈췄다. 지난해 10월 덴마크 오픈부터 이어온 무패 행진이 버밍엄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 달라진 왕즈이, '안세영에 당한 10연패'의 한 풀다
상대는 가장 많은 승리를 안겨줬던 2인자였다. 안세영은 결승 전까지 왕즈이와의 상대 전적에서 18승 4패, 최근 10연승을 질주하며 절대 우위를 자랑했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에서도 2-0으로 완승을 거두며 '격차는 여전하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상대다. 하지만 이날 왕즈이는 달랐다. 세계 2위다웠다. 체력, 수비, 공격 전환 모두에서 가벼운 몸놀림을 뽐냈다. 연속 수비 뒤 짧게 떨어뜨리는 샷으로 안세영의 리듬을 흔들었고 랠리가 길어질수록 주도권을 쥐었다.

◆ 안세영, 1게임서 흐름을 빼앗기다
안세영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먼저 2점을 따내며 기분 좋게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곧바로 연속 실점과 네트를 타고 떨어지는 불운한 셔틀콕이 겹치며 3-6으로 끌려갔다. 비디오 판독까지 외면하며 분위기는 완전히 왕즈이 쪽으로 기울었다.
왕즈이는 짧게 떨어뜨리는 셔틀과 길게 빼는 수비를 섞어 안세영을 코트 구석구석으로 몰았다. 안세영이 각을 만들려는 공격 시도는 번번이 네트에 걸렸다. 6-11로 뒤진 채 인터벌에 들어간 뒤에도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막판 15-20까지 추격했지만 마지막 공격이 라인 밖으로 벗어나며 15-21로 첫 게임을 내줬다.

◆ 2게임서 무릎 부여잡은 셔틀콕 여제
2게임 초반도 왕즈이의 기세가 이어졌다. 점수는 2-5까지 벌어졌고 TV 중계 화면에는 숨을 몰아쉬며 힘에 부치는 듯한 안세영의 표정이 잡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비 위주의 랠리에서 한 점씩 따라붙더니 마침내 7-6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 공격 템포를 끌어올리며 9-6까지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수가 너무 많았다. 연속 범실이 나온 끝에 10-11로 뒤집힌 채 인터벌을 맞았다.
승부처는 중반 이후였다. 반대 코트로 방향을 전환하는 안세영의 '전매특허' 패턴 공격이 이날만큼은 번번이 라인을 살짝 살짝 벗어났다. 챌린지 요청도 무위로 돌아갔다. 안세영은 무릎을 부여잡으며 아쉬움을 삼켰다. 스코어는 어느새 16-20, 벼랑에 몰리자 세계 1위의 집중력이 다시 빛났다. 안세영은 셔틀 궤적 하나하나를 끝까지 따라가며 세 포인트를 연달아 따내 19-20까지 추격했다. 왕즈이의 표정이 흔들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왕즈이의 대각선 스매시가 안세영의 코트 안에 꽂히며 챔피언십 포인트가 됐다. 안세영은 무릎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왕즈이는 두 팔을 벌려 감격했다. 코트로 뛰어들어온 중국 코치도 왕즈이와 포옹하며 감격했다.
◆ 무너진 날 아닌 새 도약의 이정표 되길
전영오픈은 127년 전통을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배드민턴 대회다. 단식 우승자에게만 10만1500달러(약 1억4700만원)가 주어질 만큼 상금과 랭킹 포인트에서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안세영은 이미 2023년과 2025년 이 무대를 정복하며 한국 단식의 지도를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이날 패배로 연승 기록과 2연패 도전은 멈췄지만 세계 최강의 자리는 하루아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18승 5패가 된 라이벌과의 전적, 36연승이 말해주듯 여전히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은 안세영이다. '무너진 날'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기 위해 캘린더에 표시해 둔 날이다.
psoq133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