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에 대한 대중(對中) 수출을 승인했지만, 정작 중국에는 아직 한 개의 칩도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 상무부 수출집행 담당 데이비드 피터스 차관보는 24일(현지시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엔비디아의 두 번째로 가장 첨단인 AI 칩 H200이 지금까지 중국 고객에게 팔린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전혀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조건부로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규정을 공식 승인했다.
미 연방관보에 게재된 규정에 따르면, H200은 제3자 테스트 시설에서 성능 검증을 거친 뒤 중국으로 나갈 수 있으며, 전체 생산 물량의 절반 이상은 미국 내 수요에 우선 공급돼야 한다. 또 중국 고객은 칩 사용처에 대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군사용 활용은 금지된다.
◆ 국무부 국가안보 검토에 발목...AMD도 수출 허가 대기
형식상 수출은 허용됐지만 실제 출하는 여전히 미 정부의 최종 라이선스 승인 절차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상무부는 자체 분석을 마쳤으나, 국무부가 보다 강력한 조건을 요구하며 국가안보 차원의 추가 검토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무부가 중국 업체에 라이선스를 내주기 전에 칩이 군사·감시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충분한지 따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측 규제 변화 여파로 일부 공급업체가 H200 관련 부품 생산을 멈춘 사례도 보고됐다.
이 같은 불확실성 탓에 중국 고객사들 역시 구체적인 승인 조건이 나올 때까지 H200 신규 주문을 미루는 분위기다.
엔비디아뿐 아니라 경쟁사 AMD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로이터통신과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차세대 AI 칩 MI325X에 대해 "이미 중국향 수출 라이선스를 신청했으며, 고객 수요를 파악하면서 미국 정부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AMD는 앞서 중국 전용 AI 칩 MI308 판매로 지난해 4분기 약 3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큰 상황이어서, 차세대 칩 수출 허가 여부가 실적에 적잖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 국가안보 리스크 경계 속 알리바바는 '탈(脫)엔비디아'
미국 외교협회(CFR) 등 싱크탱크에서는 국무부의 신중론이 단순한 관료주의가 아니라 "무시해서는 안 될 현실적인 국가안보 위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급 AI 칩이 중국에 대거 풀릴 경우, 상업용 클라우드·인터넷 서비스뿐 아니라 군사용 AI·사이버전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첨단 AI 칩 수출을 둘러싸고 안보 리스크를 우선시하는 강경 시각과, 일정 수준의 통제를 전제로 공급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기술 자립 가속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현실론이 병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허가 지연은 엔비디아의 실적과 중국 내 입지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의 합의에 서명하며 H200의 대중 수출에 공식적으로 '청신호'를 줬지만, 실제 매출로 이어질지 여부는 국무부의 라이선스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황 CEO는 중국 AI 칩 시장 규모를 연간 500억 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 틈을 타 중국 업체들은 '탈(脫)엔비디아'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은 자회사 T-Head를 통해 자체 개발한 고급 AI 칩을 공개하며,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중국 당국도 일부 인터넷 대형사에 대해 제한적인 H200 수입을 예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외산·국산 칩을 병행하는 복합 전략을 모색 중인 모습이다.
다만 미·중 모두에서 규제·승인 절차가 꼬이면서, 당분간 H200 실물 칩이 중국 데이터센터에 대량으로 깔리는 상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