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체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중단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내 자율주행 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수조 원의 투자와 대규모 인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자, 일부에서는 독자 개발 전략 자체가 실패했다는 단정적 해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좌초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이번 전환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반드시 거쳐야 할 학습 비용이자,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체제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재설정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사태를 기술력 부족이라는 단선적 문제로 해석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과 부진의 이면에는 기술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개발 구조와 전략 모델의 전환 지연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하드웨어 중심 자동차 기술을 넘어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핵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그러나 기존 제조기업의 개발 방식은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그 결과 기술 경쟁력 격차가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룰 기반 접근 방식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자율주행 기술은 초기 단계에서 인간이 상황별 규칙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지만, 현재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중심 구조로 전환되었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수억에서 수십억 킬로미터에 이르는 실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시뮬레이션 환경과 결합해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다.

클라우드 기반 학습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상황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유하며 예측 불가능한 도심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것이다. 반면 국내 개발은 기능 단위 엔지니어링 중심 구조와 제한된 데이터 환경 속에서 규칙 기반 접근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복잡한 교통 환경에서의 대응 능력 한계로 이어졌다. 문제의 본질은 특정 기술의 부재라기보다 데이터 기반 학습 체계로의 전환이 늦어졌다는 데 있다.
또 다른 핵심 요인은 데이터 생태계의 부재다. 자율주행 경쟁력은 더 이상 차량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느냐가 핵심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차량 자체를 데이터 수집 장치로 활용하거나 도시 단위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량 보급률과 통신 인프라가 세계적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개인정보 규제 구조, 데이터 활용 불확실성, 기업 간 협력 체계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대규모 데이터 축적이 어려웠다. 자율주행이 차량 기술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 경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더욱 분명하다.

조직 구조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완성차 기업은 오랜 기간 하드웨어 중심 제조 산업으로 성장해 왔고, 안정성과 품질 중심의 개발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은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결합된 산업이다. 빠른 실험과 반복 학습,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 구조가 필요하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중심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클라우드 기반 개발 환경에서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반면 전통적 제조기업의 연 단위 개발 주기와 폐쇄적 조직 구조는 인공지능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과의 협력 확대를 '패배'로 보는 시각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자율주행 산업은 단일 기업이 모든 요소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구조가 아니다. 인공지능 칩, 센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클라우드, 차량 제조가 분업화된 생태계 속에서 경쟁이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가가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통합하고 학습하며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은 기술 주권 상실이 아니라 개발 속도를 확보하고 역량을 재정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오히려 이번 전환은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구조로의 본격적 전환이다. 자율주행은 단일 기능이 아니라 차량 전체 구조를 재정의하는 요소다.
OTA, 차량 운영체제, 데이터 플랫폼, AI 업데이트 체계가 결합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연합형 생태계 구축이다. 자율주행 경쟁은 단일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협력 생태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셋째, 한국형 데이터 전략 구축이다. 높은 차량 보급률과 우수한 통신 인프라, 밀집된 도시 환경은 자율주행 데이터 축적에 유리한 조건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할 정책과 제도다.
국가 차원의 데이터 인프라 구축, 자율주행 실증 확대, 책임 구조 정립,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 차량 OS와 클라우드 연동을 포함한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율주행 산업 전체의 과제다. 자율주행 기술을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 기반 모빌리티 플랫폼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포기하는 순간 완성차 산업은 하드웨어 생산 중심 구조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한 기업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제조업 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투자는 헛된 비용이 아니라 학습 비용이었다. 자율주행 기술 경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기적 데이터 축적과 기술 진화가 필요한 마라톤이다. 지금의 전략 수정은 출발선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에서 올바른 트랙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자율주행 개발을 포기할 이유는 없으며 이번 전환은 새로운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이며,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박정인 교수(법학박사)는 대통령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본위원회 위원, 문체부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문체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인터넷주소분과위원회, 웹콘텐츠 활성화위원회 자문위원, 강동구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경찰청 사이버범죄 강사 등 여러 국가 위원을 역임했다. 공공기관 대상 법령입안강의를 하며, 대학에서 특허법, 저작권법, 산업보안법, 과학기술법, 정보보안법, 디지털증거법, ICT트러스트공학, 일반 산업안전, 중대재해법 등을 강의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해인예술법연구소, 숙명여대 초빙교수, 단국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