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서반구 세 확장, 쐐기 필요
희토류 매장 2위, 브릭스 창립국
고립되는 지형, 주변국 '친미'로
대선 앞두고 트럼프의 조이기?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른바 '돈로 독트린(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명명한 도널드의 영문 앞글자와 먼로 독트린의 혼성어)' 조준경이 남미 최대 자원 부국이자 중국·러시아 결속의 거점인 브라질을 겨누고 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축출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관심은 베네수엘라산 원유 생산 복구 속도에 쏠려있지만 미국의 시선은 더 넓은 영토를 향한다. 미주 대륙(서반구)의 패권을 거머쥐려는 트럼프 행정부에 브라질은 과거 대외 정책의 오랜 족쇄였던 '에너지 딜레마'에서 벗어날 최종 열쇠이자 중국과 러시아의 서반구 세력 확장에 쐐기를 박을 지점으로 여겨진다.
◆서반구 패권의 최종 퍼즐
현재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은 잠재 물량조차 브라질의 하루분에 미치지 못한다. 브라질은 2030년 세계 5대 산유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 올해 예상 하루 평균 생산량이 40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배네수엘라의 일평균 원유생산량은 현재 100만배럴이 채 안 된다. 과거 최고치였던 370만배럴에 한참 못 미친다. 10년 내 잠재 생산량은 250만배럴로 추산(JP모간)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브라질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반구 패권 장악을 통해 확보하려는 석유 자원이 단순히 에너지 자급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 대외 정책 전개의 걸림돌이 됐던 유가 급등의 위험성을 무력화할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 관점에서 브라질은 서반구 패권 퍼즐의 마지막 조각과도 같다.
서반구 전체가 영향권에 들어오면 미국은 세계 원유 생산량의 40%대를 통제권에 두게 된다. 현재 미주 대륙의 전체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4150만배럴로 추산된다. 세계 원유 생산량이 하루 약 1억배럴임을 고려하면 41%에 해당한다. 미국의 투자로 생산량이 증가할 베네수엘라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 수 있다.
◆에너지 지렛대를 원한다
미국이 국제 에너지 가격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면 대외 전략에서 손이 자유로워진다. 서반구 생산량을 조율할 수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주도의 감산 동맹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원유 가격을 억제해 재정 균형점이 각각 70달러대 후반, 120달러대로 추정되는 러시아·이란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도 얻게 된다.
당장 미국이 베네수엘라만 손을 넣어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을 통제하게 되는 셈이라, 이미 매장량의 시각에서 석유 산업에 의존하는 적성국 경제를 옥죌 카드를 확보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마두로 축출 이후 자신의 텔레그램에 "미국이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유지할 수단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전략적 가치는 석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브라질은 세계 2위 희토류 매장량 보유국이다. 약 2100만톤으로 중국(4400만톤) 다음이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의 영구자석·풍력 터빈의 발전기·정밀유도무기의 제어장치 등에 들어가는 필수 소재다. 현재 중국이 채굴의 70%와 정제능력의 90%를 장악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공급망 단절 시 첨단 제조업이 마비될 위험이 있다.
◆중·러 결속의 와해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이 브라질로 향할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는 브라질이 중국과 러시아 결속의 거점이 되고 있어서다. 브라질은 브릭스(BRICS) 창립국으로서 중국과 러시아가 축이 되는 신흥국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현재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대두·철광석·원유 수입을 통해 자국 식량·자원 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와는 에너지·방산 협력을 확대해 왔다.

200여년 전 미주 대륙에 대한 배타적 영향권을 선언한 '먼로 독트린'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브라질의 행보가 거슬릴 수밖에 없다. 적성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의 뒷마당에서 '세'를 불리도록 판을 팔아준 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대로 먼로 독트린을 넘어서는 돈로 독트린의 마침표는 브라질의 합류를 전제로 한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보면 브라질이 중국·러시아 진영에 머무는 한 브릭스(BRICS)는 남미에서 결속의 거점을 유지하게 되고 중국은 서반구 자원 공급선을 확보한 채 미국의 압박을 버틸 여력을 갖게 된다. 반대로 브라질이 이탈하면 중국은 남미산 대두·철광석·희토류 조달에 차질을 빚고, 브릭스의 지리적 결속력도 약화될 수 있다.
◆좁혀가는 포위망
지도를 펼치면 브라질을 압박하기에 유리한 판이 깔려 있다. 브라질은 이미 친미 성향 국가들에 사실상 에워싸인 형국이다. 남쪽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구제금융을 등에 업고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친미 노선을 공고히 했다. 서쪽 볼리비아와 칠레에서는 친미파가 잇따라 집권했고 북쪽 베네수엘라에서는 마두로 정권이 축출됐다. 결과적으로 브라질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
운신의 폭 축소는 브라질이 중국·러시아와의 연대를 내세워도 뒤에서 받쳐줄 역내 동맹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적 성원은 줄 수 있어도 태평양 건너에서 미국의 관세나 제재를 즉각 흡수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가 친미 진영이 된 만큼 브라질은 '메르코수르' 차원의 집단 대응력도 약화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르헨티나 금융지원 사례를 보면 브라질 고립 의도가 선명하다. 아르헨티나는 미국 경제에 시스템적 이해관계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국가(포린폴리시 논평)다. 미국은 과거에 중남미 국가를 구제한 적이 있지만 멕시코(1995년)처럼 경제의 시스템적 이해관계가 걸친 경우에 한했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네이트 셍칸은 "현실주의적·전략적 관점에서 말이 안 된다"며 "이런 것은 이념적 틀 안에서만 설명된다"고 했다.
◆10월 대선 앞두고 조이기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브라질에 대외 노선 변경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10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브라질 정치권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신호가 증폭돼 들릴 수 있다. 현재 여론조사상에서는 4선을 노리는 좌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 루이스 이니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우위가 점쳐지고 있다.
추가 관세가 쉽게 떠오르는 미국의 압박 수단이지만 올해는 동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물가를 자극할 관세 카드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11월 브라질산 커피 등 238개 품목을 40% 관세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미국 내 식품 가격 상승을 의식한 조치였다.
당장은 관세 대신 비관세 압박이 거론된다. 무역통상 부문에 대한 고강도 조사나 특정 인물을 겨냥한 표적 제재가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7월 브라질 대법관 알렉산드르 지 모라이스에게 글로벌 마그니츠키 제재(해외 인권침해자 대상 자산동결·입국금지 조치)를 발동했다가 5개월 만에 해제한 바 있다.
브라질 금융시장은 외부 압박과 내부 정치 변수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적 압박의 고삐를 죌 경우 헤알화는 되밀릴 위험에 노출된다. 대선을 앞둔 룰라 행정부가 지지율 강화를 위해 재정지출 추가 확대 계획을 내놓는다면 국채 가격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두 요인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면 시장 출렁임이 불가피하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