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시험운행, 2031년 상업화 목표
주행저항·소음·진동 대폭 개선됐지만
큰 에너지 소모량 탓에 비용 문제 발생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내년부터 상업 운행속도 시속 370km급 차세대 고속열차 'EMU-370'의 차량 제작이 본격화된다. 독자 기술로 세계 두 번째 고속운행 수준에 도달했지만, 에너지 비용과 유지·보수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떠안았다.

◆ 전동기·공력·승차감까지 손봤다…시속 370km 버티는 기술은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내년부터 상업 운행속도 370km/h(설계 최고속도 407km/h)급 차세대 고속열차 EMU-370의 차량 제작이 시작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공공기관·민간기업 등 7개 기관이 핵심기술 개발을 완료해서다. 2022년 4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총 225억원(정부 180억원, 민간 45억원)이 투입된 연구로, 2030년부터 평택~오송 구간 등에서 시험 운행을 추진한다. 2031년 이후 상업 운행을 목표로 한다.
상업 운행속도 기준으로는 중국이 400km/h급(CR450) 시험 운행을 진행 중이다. 실제 철로 운행을 시작하면 한국은 '370km/h급' 고속운행 기술을 독자 확보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고속열차를 활용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EMU-370은 KTX-청룡(EMU-320)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350km/h 이상에서 급격히 커지는 주행저항·진동·소음 등 문제를 해소한 것이 특징이다. 열차가 빨라지면서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 8량 기준 길이가 200.1m로 청룡(191.1m)보다 더 길고, 좌석은 479석으로 청룡(515석)보다 줄었다.
열차를 밀어주는 전동기 용량은 560kW로 청룡(380kW)보다 훨씬 커졌다. 쉽게 말해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힘을 키우고, 공기저항·소음·진동을 줄이는 설계를 더한 모델이 EMU-370인 셈이다.
김석원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400km급 고속철도 종합 계획에 맞춰 속도 향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주행 안정성·진동·소음 문제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며 "현재 차량 기술기준이 350km/h까지를 전제로 운영돼 그 이상의 속도 영역을 적용할 수 있는 기술기준 개정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기술기준 개정안의 경우 안전성과 국내 운영환경을 함께 반영해 마련됐다. 연구원은 필수 요구사항 9개, 주요 장치별 기준 13개, 부품·구성품 시험 5개, 완성차 시험 9개, 실전 시험 13개 등 항목을 체계화해 400km/h급까지 적용 가능한 성능평가·안전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핵심기술 개발의 경우 총 6개 분야에서 성과가 도출됐다. 전동기 크기는 줄이되 성능은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새로 설계됐다. 소형·고밀화 설계에 냉각과 절연 성능까지 강화해, 출력이 560kW로 KTX-청룡보다 47% 이상 커졌다.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도 공을 들였다. 열차 앞부분을 더 매끈하게 다듬고 하부 대차에는 커버를 씌웠다. 공기저항 계수(cd)는 0.868에서 0.761로 12% 넘게 낮아졌다. 전력 소비를 약 7%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중요한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도 개선됐다. 공기스프링과 댐퍼 등 현가장치를 최적화해 좌우 흔들림을 30% 이상 줄였고, 승차감 지수(Nmv) 역시 유럽 기준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1.14~1.87을 기록했다. 실제 주행 환경과 유사하게 재현한 롤러 리그 시험(철도 차량 부품의 주행 성능과 안전성을 실내에서 검증하는 방식)에서는 시속 400km 이상에서도 안정성이 유지됨을 확인했다.
실내 소음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차체 구조를 개선하고 복합 차음재를 적용해 소음을 68~73dB 수준으로 낮췄다. 이는 KTX-청룡보다 2dB 줄어든 수치다. 체감 소음은 약 20% 감소한다. 고속 주행 시 급격한 압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밀 승강문을 국산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 왔던 핵심 부품을 국내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내년 상반기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은) EMU-370 초도 차량 1~2편성(총 16량)을 발주할 예정이다. EMU-370이 향후 국내 주력 고속열차로 자리 잡을 경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 5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전국 주요 도시간 소요 시간이 짧아지면서 국가가 단일 생활권에 가까워지고, 350km/h급 이상 고속철도의 해외 시장 확대 흐름 속에서 수출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속도 다음은 경제성" 상업 운행의 마지막 관문
한국 고속철도는 기술 이전에서 출발해 독자 기술을 확보하고 다시 차세대 열차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본격적인 출발점은 프랑스 TGV 기술을 이전받아 도입한 KTX다. 2004년 4월 최고속도 300km/h로 영업 운행을 시작한 KTX는 동력집중식 방식의 열차로, 총 46편성이 도입돼 전국 고속철도망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기술 자립을 목표로 추진된 것이 한국형 고속시험열차 HSR-350X 개발 사업이다. HSR-350X는 최고 시험속도 352.4km/h를 기록하고 누적 주행거리 20만km를 달성하며 고속철도 핵심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상용화된 열차가 KTX-산천이다. 2006년 국제경쟁 입찰을 통해 국내 업체가 제작을 맡았고, 2010년부터 영업 운행에 들어갔다. 현재 KTX-산천은 총 71편성, 710량이 운영되며 기존 KTX와 함께 국내 고속철도의 주력 차량이 됐다.

고속철도 기술은 동력집중식에서 동력분산식으로 확장됐다. 연구원이 HEMU-430X는 국내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시험열차로, 최고 시험속도 421.4km/h를 기록하며 고속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승객 공간 활용성과 가감속 성능을 개선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HEMU-430X 개발 성과는 KTX-이음과 KTX-청룡으로 이어졌다. 모듈형 편성 개념을 적용해 수요에 따라 차량 길이를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KTX-이음은 6량 편성으로 최고속도 260km/h, KTX-청룡은 8량 편성으로 최고속도 320km/h까지 운행한다. 중앙선, 경강선 등 준고속 노선을 중심으로 운행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그 다음 단계가 EMU-370이다. 김 수석연구원은 "국내 고속철도는 이제 기술 도입 단계를 넘어, 수요 맞춤형·고속화 경쟁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 상업 운행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현실적인 숙제도 적지 않다. 핵심은 에너지 비용과 유지·보수 부담이다. 최성훈 연구원 철도차량본부장은 "운행 속도를 시속 370km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기존 300km/h급 열차 대비 에너지 비용이 최소 40% 이상 증가한다"며 "전력 요금 부담이 커진 현 상황에서 비용 절감 없이는 상업 운행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코레일 역시 전력비 상승으로 운영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 고속화에 따른 비용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코레일이 최근 5년간 지출한 전기요금은 2조2199억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적자(2조0598억원)보다 많다.
속도 향상에 따른 차륜·레일 마모 증가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고속 주행이 잦아질수록 부품 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유지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기술적 대응이 필요하다. 최 본부장은 "기술적으로 시험 운행은 가능하지만, 영업 운행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경제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수익성과 운영 비용의 균형이 맞아야 실제 투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내년부터 에너지 효율 개선과 유지비 절감을 목표로 한 신규 연구과제에 도입한다. 정부와 코레일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연구 성과를 신속히 현장에 반영할 방침이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