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들어 관련 선박 180척 이상 제재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미국이 이란산 석유의 불법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제재를 한층 강화했다. 이번 조치는 글로벌 원유 공급망과 해상 운송·보험 시장에 새로운 긴장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8일(현지시간) 이란산 원유 및 석유제품을 불법적이고 기만적 해상 운송 관행으로 수출해 온 선박 29척과 관련 해운사들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OFAC에 따르면 수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들 선박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며, 제재는 이란의 석유 및 석유화학 부문을 겨냥한 행정명령 13902호(E.O. 13902)에 근거해 이뤄졌다.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으로 불리는 이 선박들은 대체로 노후 선박이며, 소유 구조가 불투명하고 국제 표준 수준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재무부는 이들이 선박 간 환적(STS)과 자동식별시스템(AIS) 조작 등 기만적 수법을 동원해, 제재 대상인 이란산 석유 및 석유제품을 운송해 왔다고 지적했다.
존 헐리(John Hurley)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밝혔듯,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무부는 이란 정권이 군사 및 무기 프로그램 자금으로 사용하는 석유 수익을 계속 박탈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재집권 이후 현재까지 이란산 석유 수송에 책임이 있는 180척 이상의 선박을 제재했다. 이를 통해 이란 석유 수출업자의 거래 비용을 높이고, 이란 정권이 석유 판매로 거두는 수익을 줄이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번 제재에는 원유뿐 아니라 연료유, 나프타 등 다양한 석유제품을 운반하는 선박이 포함됐다.
해운·보험 업계와 분석기관들은 중동 정세 불안과 제재 강화가 단기적으로 이란산 석유의 해상 운송을 위축시키고, 전쟁위험보험과 해상보험료, 운임에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인근 해역을 운항하는 유조선의 보험료가 이미 인상되고 추가 보안 조치가 요구되면서, 중소 선사와 제3국 정유사의 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에너지 분석기관들은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가 선박 간 환적과 원산지 위장 등을 통해 이란산 원유를 계속 도입하고 있어,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실물 공급 차질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산 원유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고, 일부 인도 정유사들도 할인된 원유를 매입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재 효과가 공급량 자체보다는 거래 경로의 복잡화와 비용 구조 상승에 더 크게 반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조치는 이집트 출신 사업가 하템 엘사이드 파리드 이브라힘 사크르(Hatem Elsaid Farid Ibrahim Sakr)도 겨냥했다. 그의 회사들은 이번에 제재된 선박 7척과 연관된 것으로 지목됐으며, 다수의 해운회사 역시 함께 명단에 올랐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중동 내 무장 대리세력 지원을 이유로 강도 높은 제재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란은 자국 핵 활동이 평화적 목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최근 테헤란과 워싱턴의 긴장은 지난 6월 이스라엘·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으로 촉발된 12일간의 공중전 이후 한층 고조된 상태다. 미국은 지난 10일 베네수엘라 연안에서 과거 이란산 석유 거래에 연루됐던 유조선 '스키퍼(Skipper)'호를 압류해 베네수엘라와의 갈등도 키우고 있다. 이 선박은 2022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아디사(Adisa)'라는 선명으로 운항할 당시 이미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