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잉볼 울리면 책 덮고 눈 감는다…교과서 대신 '사색의 시간'
"필기 공부보다 기억에 남아요"…학생이 말한 독서융합 수업의 힘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화성은 낮밤 온도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어린 왕자는 옷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은 어린 왕자는 푸른 일몰을 감상합니다."
학생들은 딱딱한 과학 교과서 대신 녹색 코트를 걸친 금발의 어린 왕자가 그려진 책을 펼쳤다. 어린 왕자의 영지가 'B612'가 아니라 가장 밝은 금성이었다면, 우리 지구와 가장 가까운 화성이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희박한 대기 때문에 일교차가 큰 화성의 하루, 지구와 다른 대기 성분으로 붉은빛 대신 푸른빛이 도는 화성의 일몰 풍경이 교과서보다 더 생생히 학생의 뇌리에 박힌다.

◆ 광성중 국어·과학 등 교과 연계 독서 수업 운영
뉴스핌이 18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광성중학교 과학 시간 풍경이다. 광성중은 국어, 과학 등 교과 연계 독서 수업을 운영 중이다.
어린 왕자의 영지로 금성을 선택한 광성중 1학년 김재윤 군은 "금성이 가장 밝은 행성인 만큼 어린 왕자도 밝은 사람이 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같은 학년 김리후 군은 화성을 골랐다. 리훈 군은 "그동안 이론을 배우고 필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독서융합 교육을 받으니 책을 통해 과학 이론과 맞물려 과학 개념을 배우게 돼 기억에 더 잘 남는다"라고 전했다.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활용한 과학 수업이 한창인 동안, 옆 교실의 국어 선생님은 국어 교과서나 보드마카 대신 양손에 싱잉볼을 들었다. 학생들의 걸상에는 고전 명작부터 철학책까지 저마다 고른 책이 놓여 있다.
선생님이 싱잉볼을 울리면 책 읽기를 멈추고 눈을 감고 사색에 빠진다. 이후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문장과 감상을 공유한다.
광성중 3학년 강태윤 군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은 주인공 싱클레어와 같은 전 세계 10대 소년들의 마음을 뒤흔든 명문장으로 꼽힌다. 태윤 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윤 군은 "제 성격이 고정관념 하나에 박히면 거기에 얽매여 생각하고는 하는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같은 학년 원주호 군은 한병철 교수의 불안사회에 대해 "불안을 어떻게 없애고 행복한 삶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라며 "제가 남과 비교를 많이 하는 성격인데 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걸 실천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 독서로 문해력부터 학습까지 잡는다…서울교육청, 독서교육 2030 추진 계획 발표
내년에는 이 같은 광성중의 풍경이 서울 관내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광성중에서 '책 읽는 학교, 책 읽는 마을, 책 읽는 서울' 비전으로 한 선포식을 열고 '독서·토론·인문학 교육 2030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초·중학교 11개교에서 '독서 중점학교'가 시범 운영되고, 고등학교 5곳에 '인문학 실천학교'가 운영된다.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 수업과 독서 토론을 연계한 개념 탐독 실천 교실 60여 개가 운영될 예정이다.
이번 계획의 목적은 디지털 과의존으로 인한 학생 문해력 저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깊이 있는 학습'을 실현하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어과목 기초학력이 역대 최악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문해력 저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사들은 문해력을 끌어올릴 수단으로 독서를 꼽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지난해 10월 한글날을 맞아 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생들의 문해력 개선을 위해 필요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독서활동 강화(32.4%) 답변이 가장 많았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선포식에서 "AI·디지털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아이들이 단순한 정보 수용자가 아니라 출처와 정확성을 스스로 검증하고 깊이 있게 사고하며 판단할 수 있도록 문해력과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교육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영유아 시기부터 4세 고시, 7세 고시 등 조기 교육에 시달리고 모두가 의대 진학을 목표로 질주하는 왜곡된 현실이 계속되고 있는 반면 독서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문해력 하락과 언어 능력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며 "독서·토론·인문학 교육 정책이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 뒷받침하겠다"라고 약속했다.
jane9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