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앞두고 하청 노동자 감축 심화
고용불안·처우개선 논란 크지만 선제적 대응 부족
참여연대 시절 '고용차별반대'와 상반된 입장 지적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금융권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 현안으로 다루지 않았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이슈가 될 것으로는 보이지만 고용노동정책에 대한 부분에 대해 섣부른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노동의 외주화'와 관련된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1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110일만에 첫 출입기자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금융권 비정규직을 둘러싼 고용불안 및 처우개선 등에 대해 '주요현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남겼다.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시행에 앞서 노동권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즉각 터져 나왔다. 금융권 전반을 감독해야 하는 금감원의 수장이 주무부처 운운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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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연 금융증권부 차장. |
금융권 비정규직 대부분 콜센터에서 근무중이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은행·카드·보험·증권 48개사 전체 콜센터 직원 2만3000여명 중 70%에 달하는 1만6000명이 비정규직(하청)이다. 은행의 경우 6400여명 중 90% 육박하는 5600여명이 하청이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는 인력들을 감안하면 2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단순한 고용정책이 아닌, 금융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콜센터 관계자는 "콜센터 업무에는 계약, 대출, 송금, 추심 등 사실상 금융사의 모든 업무가 포함된다. 결국 주요 금융업무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를 단순한 계약상의 문제로 바라보는 금감원장의 입장이 개탄스럽다"고 반발했다.
특히 최근 금융권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 노동자들의 쟁의권 강화를 염려한 금융사들의 비정규직 축소 움직임이 심화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지만, '계약종료'를 앞세운 금융사에 대응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KB국민카드가 대표적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카드는 대전 신용상담센터 근로자 150명에서 지난 21일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고용승계나 위로금 제안 등은 전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국민카드 사태는 현역 여당 의원이 개입하며 합의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세간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단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금융권에서 흔한 일이다.
또다른 콜센터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돼도 이런 일방적인 계약해지 관행이 해결될지는 미지수"라며 "노동자와 금융권, 그리고 당국이 함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의 이번 발언이, 과거 그의 비정규직에 대한 철학과 너무 상반된다는 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2017년 기고한 칼럼에서 "사회의 통합과 정의를 실현하고 헌법 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평등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차별금지사유에 인종과 언어, 장애는 물론이고 '고용형태 등'을 추가해 고용에 있어서의 차별을 헌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다.
그나마 이 원장이 금융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소비자 보호라는 본질적 부분에 장애가 발생할 때는 감독 당국으로서 나름대로 준비해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여지는 남겼다는 게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노동환경을 바꿀 중요한 계기지만, 그만큼 사업자들의 우려와 반대도 상당하다. '노동의 외주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금융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노동정책이라는 이유로 이를 피하려는 금감원장의 발언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년 3월 법 시행을 앞두며 각계각층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한다.
peterbreak2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