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가 부채 감축·긴축 예산을 둘러싼 여야 충돌과 잇따른 총리 실각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 특히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그의 퇴진과 조기 대선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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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마크롱 1기 내각 때 첫 총리를 지냈던 에두아르 필리프 르아브르시(市) 시장은 7일(현지 시간) "현재 프랑스를 뒤흔드는 정치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조기 대통령 선거 실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필리프 시장은 이날 RTL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후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중요하다"며 "지난 6개월간 우리가 경험한 상황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는 2027년 치러질 대선까지) 앞으로 18개월은 너무 길고, 프랑스에게도 해가 될 것"이라며 "지금 펼쳐지고 있는 정치 게임은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필리프 시장은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직후인 2017년 5월 15일 총리에 임명돼 2020년 7월 3일까지 약 3년 2개월간 총리로 재직했다.
그는 퇴임 직후 노르망디주(州) 르아브르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 10월에는 중도 우파 정당인 '오리종(Horizons)'을 창당했다. 오리종은 마크롱 대통령 중심의 범여권 세력인 '앙상블'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다음 대선 때 출마가 유력한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마크롱 정권의 가장 중요한 동맹 중 한 명이 대통령 사임과 조기 대선 실시를 촉구했다"며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이 초래한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인 르네상스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가브리엘 아탈 전 총리도 "(마크롱 대통령이) 이제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필리프 전 총리의 주장에는 찬성할 수 없다면서도 "대통령의 결정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계에서는 아탈 전 총리도 중도 진영의 잠재적 대선 후보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조기 총선을 실시하던지, 아니면 대통령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우선 의회를 해산한 뒤 조기 총선 또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사퇴가 결정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야당과 협상을 시도해 보라고 촉구했지만 극적인 타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르코르뉘 총리가 2026년 예산안이 협상의 우선순위 중 하나라고 밝힌 가운데 극우성향의 국민연합(RN) 측은 르코르뉘 총리와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연합은 "마린 르펜 의원과 바르델라 대표는 르코르뉘 총리의 초대를 거부했다"며 "협상이 프랑스 국민의 이익이 아닌 마크롱 대통령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엘리제궁 관계자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마크롱의 이 발언은 그가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의미로 널리 해석됐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는 작년 여름 총선 이후 1년 넘게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다. 선거 결과 좌파와 극우, 마크롱의 중도우파 연합 등 세 진영이 거의 비슷한 의석을 차지하면서 어느 쪽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