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투자 상업적 타당성이 한미 협상 최대 걸림돌"
현대차 이민 단속 관련 "트럼프 지시로 보지 않아"
"당분간 남북 대화 가능성 낮아"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이재명 대통령은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무역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현재 요구를 안전장치 없이 수용할 경우 1997년 외환 위기와 맞먹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22일 공개된 로이터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구두로 관세 협상에 합의했고, 주요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완화하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해당 투자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대한 이견 때문에 아직 문서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금요일 집무실에서 진행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통화스와프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미국에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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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통신은 한국이 외환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했는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지 내지는 해당 제안이 협상 타결에 충분할지 등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4,100억 달러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며, 원화가 국제통화로 통용되지도 않고, 미국과 스와프 라인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 대통령은 양국이 투자 프로젝트가 상업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했지만, 세부 합의 도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 합의가 핵심 과제이자 최대 난관"이라며, 현재 실무 차원 제안에는 타당성 확보 장치가 없어 간극을 메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상 파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혈맹 관계라면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주한미군 2만8,500명으로 보강된 자국 방위비 증액에는 이견이 없지만, 미국은 안보와 무역 문제를 분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내년까지 협상이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불안정한 상황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조지아주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300명 이상의 한국인 근로자를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한국인들이 "가혹한" 처우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 사태가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투자를 꺼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이번 단속이 동맹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체류를 허용하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또 이번 사태가 트럼프의 지시가 아니라 과잉 단속의 결과라고 봤다.
그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미국 측도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했으며, 합리적인 조치를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당분간 남북 대화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음 달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재회담을 시도해 달라고 권유했는데, 미국과 북한 간 대화 상황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없다고 밝히면서 "현재 실질적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이 한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봤고, 다만 단순 대응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대화와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사회주의 국가 진영과 한국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으며,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양 진영 충돌의 최전선이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미·일이 협력을 강화할수록 중·러·북도 결속을 강화하는 긴장 고조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에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찾아야 한다. 평화적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이번 방미 일정에서 "민주주의 한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겠다고 했다.
또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 후 공동 성명이나 구체적 발표는 없었지만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측은 뉴욕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예정돼 있지 않으며, 무역 협상도 의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