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비상하는 한 패션디자이너 일대기 시적 서사로 구성
옷과 패션에 대한 철학과 아울러 우리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
[대구=뉴스핌] 김용락 기자 = "옷,/형상이 없는 마음에/가시적인 모양을 부여하는예술."(챕터 65) "억압과 구속을 바짓단으로 펼쳐 풀어버리고/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는 바지."(챕터 71)
한국 문단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안도현 시인(단국대 문창과 교수)이 신간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몰개)를 출간했다. 이책은 저자가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쓴 책"이어서 소설인듯 소설이 아니고, 동화인듯 동화가 아니고, 에세이인듯하면서도 에세이가 아니고, 시인듯하면서도 시가 아닌 형식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작가 루쉰(魯迅)이 즐겨 쓴 산문 형태인 '잡감(雜感)'도 아닌 독특한 양식의 책이다. 서정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문체와 흥미로운 서사가 어우러진 점, 그리고 패션계 히로인 조세핀 조의 일생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현대판 서사시로 보이기도 하고, 구성면에서 갈등과 절정을 보인 점에서는 소설에 준하는 양식이기도 하다.
![]() |
안도현 시인이 신간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 를 출간해 주목을 끌고있다.[사진=몰개출판사]2025.08.20 yrk525@newspim.com |
"행과 연, 단락과 문단을 만드는 기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문장이 스스로 숨을 쉬도록 방치하고 싶었"(163쪽)다는 저자의 말처럼 독특하고 재미있는 일종의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책이다.
알려진 바 안도현 시인은 시인으로 나름 일가를 이루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산문으로도 독자들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50만부 이상 팬매됐으며 해외 15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백석 평전'도 문단의 주목을 끈 중요한 저서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는 전통 윤리와 인습을 깨고 '자유'를 찾아 비상하는 한 패션디자이너의 일대기를 시적 서사로 다룬 작품이다. 군데군데 펼쳐진 시적 아포리즘은 이 작품의 미학적 깊이를 담보하고 있어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여준다. 게다가 허구를 가미했다고 하지만 작품의 주인공이 동시대 유명인사인 헌법학자이자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안경환 교수의 어머니라는 사실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 |
[대구=김용락 기자] 안도현 시인(단국대 문창과 교수) 2025.08.20 yrk525@newspim.com |
옷과 패션에 대한 철학과 아울러 우리 역사에 대한 성찰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어서 저자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한 셈인데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모두 86챕터의 시적서사로 구성돼 있으며 총 163쪽의 가벼운 부피로 손에 쏙 들어온다. 오는 21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쎄라비 음악다방에서 저자인 안도현 시인이 참여하는 출간기념 북콘서트가 열린다.
yrk5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