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해소 측면에서는 시장에 호재"
의약품과 금속 등에 이견 여전...추가 관세 리스크 잔존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7일(현지시간) 15% 관세 합의를 발표하면서 굵직한 시장 리스크 하나가 해소된 모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합의 자체는 환영할 소식이나 양측이 핵심 세부 사항을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는데다, 이행 여부와 이후 나타날 경제적 충격파 등은 여전한 불안 요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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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미·EU 무역 협정 발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뉴스핌] 2025.07.28 kwonjiun@newspim.com |
◆ 의약품·금속 부문 등 여전히 '애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정상회담 뒤 발표한 합의 내용은 일단 미국이 자동차를 포함한 EU산 수입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7500억달러(약 1037조 8400억원) 규모의 미국 에너지를 구매하고, 6000억달러(약 830조 7000억원) 수준의 대미 투자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또 구체적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EU가 대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도 구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15%의 "포괄적이고 일괄적인" 관세율을 확인하며, 이 협정이 미·유럽 관계에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측은 핵심 세부 사항에서는 다소 엇갈리는 입장을 보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이후 발언에서는 상황이 좀 더 복잡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협정에는 항공기 부품과 일부 광물 등 "전략적 제품에 대한 무관세"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기존 방침대로 50% 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장벽을 줄이기 위해 관세는 인하될 것"이라며 "쿼터제(무관세 할당제)가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합의에 EU 철강·알루미늄 수출은 포함되지 않으며, 기존대로 50% 관세가 유지된다"고 밝혔고, 항공우주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232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0% 관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의약품 관세에 대해서도 양측의 설명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은 이번 협정에서 제외되며, 이는 더 높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EU는 의약품에 15% 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한 뒤, "이후 미국 대통령이 내리는 어떤 결정이든 그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뒤늦게 EU 의약품 수출품에 대해 15% 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단, 의약품에 대한 별도의 232조 국가안보 조사가 향후 3주 안에 발표될 예정이며, 관세율은 그 조사와 별개로 15%로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항공우주, 제약,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대해 추가 관세 부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는 점도 남은 불확실성을 시사한다.
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항공우주 산업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EU산 항공기에는 미국이 별도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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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 뉴스핌] |
◆ 전문가들 "일본과 비슷...악마는 디테일에"
이번 합의 소식에 유럽 주요국을 비롯해 전문가들은 일단 불필요한 무역 갈등을 피했다는 점에서는 '호재'가 분명하나, 세부사항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추가적인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15%의 관세율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일본과 유사한 합의라는 반응도 나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무역전쟁이 일어났다면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이었을 것"이라며, 독일 자동차 산업이 미국의 관세를 기존 27.5%에서 15%로 인하 받게 됐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독일산업연맹(BDI) 이사 볼프강 니더마르크는 이번 합의를 "불충분한 타협"이라고 비판하며, "EU가 고통스러운 관세를 받아들였고, 독일 수출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페퍼스톤 선임 연구 전략가 마이클 브라운은 "이번 협정은 '거래 성사되지 않을 경우의 리스크'가 해소된 측면이 크지, 정확히 15%냐 20%냐 하는 차이는 단기적으로 시장 반응에는 크게 영향이 없을 수 있다"면서 "당연히 유로화와 주식선물 시장은 상승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하나의 명분이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텔리머 전략 책임자 하스나인 말릭은 "15%라는 헤드라인 관세율은 특히 유럽 제조업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라면서 다만 "일본과의 협정과 마찬가지로 '악마는 세부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특히 금속 부문은 이미 혼란이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얼라이언스버른스타인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위노그라드는 "양측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게 협정을 준수할지가 관건"이라면서 "시장 관점에서는 '합의 자체가 없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가 큰 안심 요소"라고 말했다.
체리 레인 인베스트먼트 파트너 릭 메클러는 "관세가 높아진 만큼 인플레이션 압박이 있을 수 있고, 제조업체들이 얼마나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무역수지 개선 측면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관세를 글로벌 경제 구조 조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긍정적인지, 아니면 단순한 미국 내 일자리 보호세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고 덧붙였다.
베렌베르크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홀거 슈미딩도 "극심한 무역 불확실성이 거의 사라졌고, 이번 합의는 EU 입장에서도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미국 소비자들은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해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제 성장률을 기존 2%에서 1.5%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싱크탱크 테네오 연구 부소장인 카스텐 니켈은 "이제 초점은 해석과 이행 리스크로 옮겨질 것이며, 정치적·기술적 문제들이 뒤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합의의 성격을 고려할 때, 중대한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