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1거래소-1은행' 원칙 폐기 대선 공약으로
은행권, 정치권 간담회서 관련 안건 공식 건의
은행 수익 다변화 기대되지만 독과점·자금세탁 우려 여전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지금까지 암묵적인 룰로 여겨졌던 가상자산거래소의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가 대선 공약으로 올라오면서 은행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순이익에도 온전하게 웃지 못했던 은행들은 가상자산사업 강화를 통한 수익원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를 검토 중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디지털 가상자산 공약 가운데 하나로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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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암묵적인 룰로 여겨졌던 가상자산거래소의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가 대선 공약으로 올라오자, 최근 기준금리 인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순이익에도 온전하게 웃지 못했던 은행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1년간 주요 은행 및 금융지주의 순이자마진(NIM) 및 비이자이익 지표. [사진=김아랑 미술기자] |
현행법상 한 거래소가 하나의 은행만 제휴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은 없지만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우려에 따라 암묵적으로 '1거래소-1은행' 체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은행과의 거래만 감시하면 돼 자금세탁방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용이해서다.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는 가상자산업계의 해묵은 안건이었지만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건의하면서 공론화됐다. 정 은행장은 최근 국민의힘과의 은행장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1거래소 1은행' 제휴 체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 은행장은 소비자 선택권과 법인 고객 제약 등을 이유로 현 체제는 시스템 안정성에 리스크가 있다는 근거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 가상자산은 탐나는 먹거리다. 가상자산거래 특성상 거래에 따른 수익이 예금과 비이자이익 곳간을 늘리는 구조라 은행들로서는 실적 발표 시즌마다 쏟아지는 '이자장사' 비판을 피하면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거래소 제휴 시 은행 계좌로 들어오는 거래소의 예치금은 다른 예적금 대비 이자를 거의 안 줘도 되는 저원가성 예금에 속해 수익성이 높다. 업비트와 오랫동안 제휴 관계를 맺어온 케이뱅크 역시 가상자산 예치금이 예금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신규 고객으로 유입되며 전체 수신 규모가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을 통해 비이자이익도 확보 가능하다. 은행권에서는 홍콩 H 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영향이 가시지 않은 현 금융환경 특성상 가상자산이 사실상 유일한 비이자수익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의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상을 놓고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이 수수료 감면에 익숙하다 보니 비이자사업 부문에서는 신탁업 의존도가 높았는데, 이마저도 ESL 손실 여파로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이자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한 환경이라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은행권의 이자이익·비이자이익 관련 수익성 지표는 흔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순이익 자체는 양호했지만 순이자마진(NIM)은 1.56%로 전년 동기(1.64%) 대비 0.08% 하락했다. NIM은 금융기관의 수익에서 조달 비용을 뺀 뒤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값으로, 쉽게 말하면 금융사가 이자 수익으로 얼마나 벌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NIM이 하락한다는 것은 이자이익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1분기 국내 은행의 NIM이 하락한 것은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 대출금리가 하락한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는 4.36%로 2023년 말 기록했던 5.14% 대비 0.78%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은의 기준금리 역시 3.50%에서 2.75%로 0.75%p 내려갔다.
비이자이익 성장을 통한 수익성 방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비이자이익 역시 전년 동기 3조2980억원에서 올 1분기 3조2515억원으로 감소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익구조 다변화가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제휴 기회 확대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은행권과 달리 금융당국과 가상자산업계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특히 업계에서는 대형 거래소 중심의 점유율 격차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점유율 1위인 업비트와 관계를 맺기 위해 물밑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 선택권 확대와 독과점 해소가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기의) 기대사항으로 꼽히지만 현실적으로 은행들은 이미 많은 고객과 수익을 확보한 대형 거래소와 제휴를 시도할 공산이 크다"며 "오히려 여러 은행들이 점유율이 높은 소수 거래소에 쏠리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라고 염려했다.
금융당국의 걱정거리 역시 비슷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7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가상자산사업자의 독과점 우려, 자금세탁 리스크 문제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자칫 독과점 부분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은행이나 가상자산사업자가 충분히 자금세탁 리스크를 방지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더 짚어보고 판단하겠다"라고 말했다.
jane9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