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완 우리은행장, 간담회서 "1거래소 1은행 체제 변화 필요"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 "가상자산, 이제는 투기 아닌 금융자산"
빗썸 제휴한 KB, 요구불예금 5조↑…은행권 물밑경쟁 본격화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압도적인 비율로 가상자산시장을 점유 중인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제휴 계약 만료가 반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은행권이 가상자산거래소와 제휴를 맺는데 공들이고 있다. 최근 빗썸과 제휴한 KB국민은행이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5조원이 넘는 예금을 확보하는 등 가상자산은 은행권 새 먹거리로서 저력을 입증한 터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가상자산업계의 오랜 안건이었던 '1거래소-다자 은행'제휴까지 정치권에 직접 건의하고 나섰다.
17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진완 은행장은 최근 국민의힘과의 은행장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1거래소-1은행' 제휴 체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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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비율로 가상자산시장을 점유 중인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제휴 계약 만료가 반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은행권이 거래소 제휴 관계를 맺는데 공들이고 있다. 사진은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 제휴 현황. [사진=김아랑 미술기자] |
최근 은행권에서는 가상자산을 새 먹거리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에 이자이익이, 기준금리 인하에 예금 잔액이 각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해부터 시장 활황기를 맞은 가상자산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시장점유율 1위인 업비트가 오는 10월 케이뱅크와의 제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것도 은행들의 물밑경쟁을 점화한 지점이다.
인터넷전문은행(카카오·케이·토스뱅크) 가운데 유일하게 거래소와 연이 없었던 토스뱅크도 가상자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전에는 가상자산이 투기성 자산이었지만 이제는 금융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투자 인구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1600만명"이라며 "(제휴에 앞서) 숙제들을 풀어나가며 접근 방법을 정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역시 5대 은행 가운데 우리은행과 더불어 거래소 제휴 경험이 없는 하나은행은 공식적인 언급은 없지만, 지난해 가상자산 수탁사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올해부터 업비트 인증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가상자산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가상자산은 은행권에서 이미 수익성이 입증됐다. 올해부터 빗썸의 제휴 은행이 된 KB국민은행은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알짜 예금'으로 불리는 요구불예금이 크게 늘었다. 지난 1월 말 KB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은 150조8900억원이었는데 빗썸과 제휴 서비스 닻을 올린 3월 말에는 156조2000억원으로 5조원 넘게 증가했다. 은행 계좌로 들어오는 거래소의 예치금은 예적금 대비 이자를 거의 안 줘도 되는 저원가성 예금에 속한다. 업비트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케이뱅크 역시 가상자산 예치금이 예금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가상자산 호재는 조기대선을 발판 삼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불문하고 대선 후보들이 20~30대 젊은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친(親) 가상자산 공약을 내걸 공산이 커서다. 실제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초 가상자산을 주제로 토론회와 세미나를 다수 열었다. 금융당국도 올해 하반기 중 상장법인의 가상자산 매매 허용까지 언급하는 등 그동안 시장을 옥죄어 왔던 규제 완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정 은행장이 건의한 다자은행 제휴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정 은행장은 소비자 선택권과 법인 고객 제약 등을 이유로 현 체제는 시스템 안정성에 리스크가 있다는 근거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오는 10월 케이뱅크와 제휴 계약이 만료되는 업비트를 향한 우리은행의 복잡한 시선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은 케이뱅크의 지분 12%를 보유 중인데, 케이뱅크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업비트를 놓치면 지분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경쟁사인 하나은행이 업비트와의 제휴를 따내는 건 더욱 최악의 상황이라 차라리 '나눠갖기'를 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한 거래소가 하나의 은행만 제휴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은 없지만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우려에 따라 암묵적으로 '1거래소-1은행' 체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은행과의 거래만 감시하면 돼 자금세탁방지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용이해서다. 당국은 여전히 이 같은 문제의식을 놓지 못하고 있다. 업계 역시 관습으로 굳어진 '1거래소-1은행' 체제를 뒤집을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자은행 제휴를 한다고 해서 시장점유율에 큰 변화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은행 간 기준도 상이할 텐데 당국 우려와 같이 자금세탁문제 등 혼란만 가중될 것 같다"며 "다자은행 제휴가 오랫동안 논의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법인의 시장 참여가 가장 큰 화두"라고 전했다.
jane9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