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상속세가 기업경쟁력 절대적 약화
개인도 10억 물려주며 6억 상속세 불만
최대주주에 유리한 합병비율도 문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제도를 통해 지배구조를 강화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SK그룹은 경영권 위협으로 인해 국내 주요그룹 중 빠르게 지주회사로 지배구조를 개편한 케이스다. 하지만 기업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다.
그런데 대기업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한국의 약탈적인 상속세도 같이 거론해야 균형이 맞는다. 최고 60%(대주주 할증과세 포함)에 달하는 높은 상속세율은 넉넉한 세수 증가로 정부의 이익이 된다.
반면 합법적이긴 하지만 기업분할ㆍ합병은 대주주에는 유리하고 소액주주에는 불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높은 상속세율에 따른 이익의 주체(정부)와 기업분할ㆍ합병에 따른 손실의 주체(소액주주)는 다르다.
정치권과 정부가 이 2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는다면 균형이 크게 무너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붕괴되거나, 한국 증시 자체가 수십 년간 부진의 늪에 빠질 우려가 크다.
◆ 60% 상속세가 기업 경영권 방어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 재벌기업도 처음에는 1세대 창업가에서 시작됐다. 지분이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상속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의 상속세법을 심플하게 정리하면 최고과세율 50%로 요약된다. 상속재산의 절반인 5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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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업 오너들은 자식들에게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총력으로 상속세 절세 노력을 한다. 정부는 기업들이 상속세를 편법으로 탈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미경 보듯이 기업의 상속과정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 간에 팽팽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1세대 창업주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2세대는 상속세 절반을 납부하면 지분율이 25%로 줄어든다. 이후 3세대에 와서 다시 상속이 진행되고 상속세 절반을 납부하면 드디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12.5%의 지분율로 뚝 떨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부터는 '경영권 자체의 가치(경영권 프리미엄)'를 인정해 대주주 주식 상속 시 20% 할증과세 제도가 도입됐다. 이는 단순한 지분 이상의 지배력 확보는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최고 50%의 상속세율에 20% 할증과세가 더 해지면 최고상속세율은 60%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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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현재의 최대 60%(최대주주 할증 20% 포함)의 상속세율로 상속이 진행될 경우 3세대가 되면 지분율이 8%로 줄어든다. 3세대 만에 경영권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현실 세계에서는 1세대 창업가가 50% 지분율을 가진 경우도 무척 드문 게 일반적이다.
결론적으로 3세대 오너가 상속을 통해 기업을 경영하던, 아니면 지분이 분산된 상태에서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위주로 기업을 경영하던 일반 주주입장에서는 상관없다. 기업 경영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고생해서 만든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하는 창업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재벌들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 최대 60%의 상속세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하지만 이 최고과세율을 동일하게 중산층 국민들에게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0억원 재산을 물려줄 때 무려 6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물론 상속세법상 실제로는 10억원 상속 시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가정을 통해 재벌들에 대한 최고상속세율이 얼마나 가혹한지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 인정은 핵심적인 가치다.
◆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 지분율은?
그렇다면 최대주주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최소 지분율은 몇 %일까? 딱히 정답은 없다. 하지만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의미는 최대주주가 원하는 이사들이 '이사회'에 절반 이상 선임돼 있다는 뜻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이 가능한 수준의 지분율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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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결의에는 특별결의와 일반결의가 있다. '일반결의'는 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수의 25% 이상이 찬성하면 가능하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의결권은 발행주식의 2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경우 특별히 다른 주주들이 최대주주와 적대관계에 있지 않다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혹시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25%에 미달하더라도 최대주주에게 우호적인 주주들의 지분율을 합산하여 25% 이상이면 의결권 행사 때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최대주주와 적대적이면서 지분율을 최대주주보다 많이 확보하거나 비슷하게 확보해 놓은 상태라면 이야기는 확 달라진다. 공격자는 '위임장대결' 등을 통해 최대주주와 의결권을 다툴 수 있다. 여기서 승리할 경우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뺏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SK그룹에도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 SK그룹의 악몽…2003년 적대적 M&A 공격
2003년은 SK그룹에 있어서 암흑 같은 시기였다. 당시에 SK의 자회사인 SK글로벌은 1조5500억원을 분식회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구속됐고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SK주식은 3일째 하한가 뒤에 갑자기 대량거래가 일어났다. 이날 겹겹이 쌓여 있던 엄청난 규모의 하한가 물량을 한 번에 쓸어간 큰 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글로벌 투자회사인 '소버린'의 SK그룹을 향한 적대적 M&A 공격의 시작이었다.
'소버린'은 뉴질랜드 태생의 챈들러 형제가 설립한 투자회사로 당시에 인지도가 높은 회사는 아니었다. 소버린이 SK를 공격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최대주주의 낮은 지분율이다. 또 SK 주가가 자산대비 크게 저평가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소버린은 2003년 3월에 SK 주식을 6000원대 가격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사들였다. 13거래일간 총 1768억원을 투입해 평균매입단가 9293원에 14.99%의 SK 지분을 확보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소버린은 2004년과 2005년 2번의 정기주주총회에서 SK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의결권 대결을 했으나 경영권 장악에 실패했다. 소버린은 단 1명의 이사도 이사회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외견상은 SK의 완승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안정적인 방어는 아니었다. 이 당시 SK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14% 내외로 공격자인 소버린 지분율 14.99% 보다도 적었기 때문이다. 이는 1998년에 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타계 당시 높은 상속세 탓에 최태원 회장이 충분한 지분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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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경영권 분쟁에서 SK가 완승한 이유는 소액주주들이 애국심 때문에 SK에 표를 밀어준 영향이 컸다. 또 S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백기사, 우호세력에 자사주 매각, 우호지분 확보, 소액주주 의결권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 힘겹게 경영권을 지켰다.
장기 투자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소버린'은 불과 2년 만인 2005년 7월에 보유주식 전량을 매수 평균가격 9293원의 4배가 넘는 4만9011원에 매각했다. 최초 투자금인 1768억원으로 2년만에 무려 427%인 7558억원의 차익을 얻은 셈이다 누적 배당금 485억원과 환차익 1316억원까지 다 합치면 실제 수익은 9359억원이 된다.
이 경영권 분쟁의 시사점은 크게 3가지다. 첫번째는 그 당시 SK의 주인은 지분율이 14%에 불과했던 최대주주였을까 아니면 86%의 나머지 주주들이 공동 주인일까?
두번째는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소버린'이 만약 경영권을 장악했다면 장기적으로 SK그룹은 지금보다 더 좋아졌을까? 세번째는 기업은 최대 주주 중심으로 운용되는 게 더 효율적일까 아니면 주인 없이 전문경영인 중심의 이사회 구조로 운영되는 게 더 효율적일까?
◆ 지금은 과거 SK와 다른 회사? 지주회사 마법
지금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는 과거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던 SK와는 다른 회사다. 소버린의 공격을 받을 당시의 SK 회사는 2007년에 인적분할해 SK홀딩스(존속)와 + SK에너지(신설)로 쪼개졌다.
최태원 회장은 소버린 공격 당시인 2003년에 비상장사인 'SK C&C'를 통해 SK를 자회사로 두고 이를 중심으로 SK그룹을 지배하고 있었다. SK C&C는 그룹 내 전산 개발 및 운영을 전담하는 회사였다. 전산 관련 일감의 합법적인 몰아주기가 가능한 구조다. 그 당시는 SK 외에도 각 그룹별로 이런 형태의 회사들이 대부분 존재했다.
당연히 SK C&C는 외부매출보다 내부거래 기반 수익이 훨씬 더 컸다. SK C&C는 2009년에 증시에 상장됐다. 이후 2015년에 SK C&C는 다시 SK(홀딩스 + SK에너지) 중 지주회사인 SK(홀딩스)를 흡수합병 하면서 SK는 소멸되고 존속법인은 SK C&C가 됐다. 하지만 상호는 다시 SK로 바꾸면서 현재의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따라서 2003년의 SK와 2025년 현재의 SK는 사실상 다른 회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재 SK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 SK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5.5%까지 껑충 뛴 상태다. 주주총회 일반 결의요건인 25%를 훌쩍 넘겼으므로 현재는 최태원 회장 중심의 안정적인 지배구조 형태라 볼 수 있다.
◆ 합법이지만 최대주주에 유리한 상장사 합병비율
그런데 이런 형태의 기업 분할 및 합병이 왜 문제가 될까? SK의 지주회사 전환은 모두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런 기업 분할 및 합병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최대주주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2015년 합병 당시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이 높았던 SK C&C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상태였다. 반면 단순 지주회사였던 SK홀딩스와 사업회사였던 SK에너지의 주가흐름은 판이하게 달랐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지주회사보다 사업자회사 쪽에 투자를 집중해 지주회사는 저평가, 사업회사는 고평가된다.
이런 흐름에 따라 증시에서 SK홀딩스는 저평가, SK에너지는 고평가 됐다. 이 때 최태원 회장 지분율이 높은 고평가된 SK C&C와 저평가된 SK홀딩스를 합병하면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더 확대되는 결과로 진행된다.
이는 기업의 순자산 가치가 아니라 상장사 간 합병기준에 따라 합병비율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당시 SK홀딩스 주주였던 국민연금도 합병에 반대했던 것을 보면 누구에게 더 유리한 합병이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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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회사 간 합병 시 기준주가 계산법은 간단하다. 최근 1개월간 주가를 기준으로 (1개월간 평균 종가 + 1주일간 평균 종가 + 최근일 종가) ÷ 3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주가 흐름을 잘 살피다가 최대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에 합병을 결정하면 된다. 그러면 최대주주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
◆ 자녀 상속플랜?
최태원 회장의 고민은 이혼 소송으로 인한 지배권 약화 리스크와 상속 문제다. 최태원 회장의 자녀로는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맡고 있는 장녀 최윤정과 차녀 최민정이 있다. 막내 아들 최인근까지 총 3명이다. 이들 중 누구에게 경영권을 맡길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상속전략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 시점에서는 사실 자녀 상속플랜 자체가 아예 없는 것으로 보여 진다.
최고 60%(대주주 할증과세 포함)에 달하는 상속세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 반면 상속세 절감과 지배구조 확대를 목적으로 대주주에게 유리하고 소액주주에 불리한 기업분할ㆍ합병제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longinu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