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공방이 신뢰 경영까지 흔든다
재계 상속은 기업 전통 계승의 문제
상속과 승계 윤리적 기준 마련할 때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LG그룹의 상속 분쟁이 법정 공방으로 비화하면서, 고 구본무 회장이 생전에 남긴 기업가 정신마저 희석되고 있다. 책임경영과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무노조·무분규' 전통을 이어온 LG는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손꼽혀왔다. 구광모 회장의 경영 승계 과정 또한 투명성과 안정성을 인정받으며 오너 리스크 없는 기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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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욱 산업부 차장 |
하지만 상속인 간 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LG그룹을 향한 신뢰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인의 유언장이 존재했는지, 상속 합의가 적법했는지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다툼이 대기업 경영 전반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결코 작지 않다. 기업의 명예는 경영 성과나 실적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가문의 태도와 품격,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느냐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특히 LG처럼 '다른 대기업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판을 얻어온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번 분쟁은 LG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재계 전반이 3,4세대 경영에 접어들면서 창업주 세대의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10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며 원만한 승계를 마쳤지만, 롯데의 형제 갈등은 여전히 그룹 전반에 상처로 남아 있다. 승계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시장에 불확실성을 불러오고,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며, 더 나아가 오너 리더십의 정당성까지 흔들 수 있다.
재계는 이제 상속을 단순한 자산 이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의 계승으로 바라봐야 한다. 구 회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사업보국'의 철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 정신이 유언장의 형식 논쟁이나 상속 지분 다툼 속에 묻혀 잊힌다면, 이는 LG는 물론이고 한국 재계 전체의 손실이다.
단 한 번의 갈등이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허물 수 있다. 오너 가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판단과 시장의 반응을 불러오는 시대다. 이제는 사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과 자율적 조정 시스템을 재계 스스로 고민해야 할 때다. 상속과 승계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는 기업가의 철학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