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트럼프 H20 수출 규제에 7조 손실 타격
SK하이닉스, 美 직수출 전환 땐 관세 리스크 직면
AI 수요 위축, 공급망 재편까지…전략 수정 불가피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엔비디아가 미국 내 70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 투자를 발표한 직후, 중국향 AI 가속기 'H20'이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명단에 포함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복잡한 셈법에 직면하고 있다.
H20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해 온 SK하이닉스의 경우, 직접 타격은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인 수요 둔화와 미국 공급망 재편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놓였다. HBM3E의 공급망 진입을 시도해온 삼성전자도 이번 규제로 AI 반도체 시장 전체가 위축될 경우 수익성과 성장 전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 엔비디아 'H20' 中 수출 제한
15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로부터 자사 AI 반도체 H20에 대한 중국 수출을 무기한 제한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국은 해당 칩이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출 시 별도 허가를 요구하고 규제는 무기한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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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통신] |
H20은 고사양 모델인 H100의 성능을 낮춘 중국 전용 제품으로 알리바바, 텐센트, 딥시크 등 주요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대량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재고 및 구매 약정 손실 등으로 약 55억 달러(한화 7조4000억원)의 비용을 1분기에 반영할 예정이다. 전체 순이익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 HBM3E 공급에도 불똥…SK·삼성 '전략 수정' 불가피
H20에는 당초 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3가 주로 탑재됐으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공급을 맡아왔다. 그러나 최근 H20의 성능이 일부 개선되면서, SK하이닉스 등 일부 업체가 공급하는 5세대 'HBM3E 8단' 제품이 탑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아직 HBM3E의 엔비디아 품질 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로, 현재까지 H20 공급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당장의 직접적인 손실은 없지만, 반도체 업계는 중국향 AI 칩 시장 위축으로 전반적인 수요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차세대 제품 공급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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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HBM3E. [사진=SK하이닉스] |
실제 이번 미국의 수출 통제 직전 중국의 테크 기업인 알리바바·텐센트·바이트댄스 등은 H20 칩을 총 160억달러(약 23조5000억원) 규모로 주문했으며, 이는 전 분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수출 규제로 이 중 약 3분의 1이 납품되지 못하고 재고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 기업들의 AI 서버 증설 계획도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 수요가 줄면 HBM3E·HBM4 같은 차세대 제품 수요도 함께 둔화될 수밖에 없다"며 "출하 물량을 확대하려던 SK하이닉스와 진입을 준비 중인 삼성전자 모두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공급망 美로 이동…SK하이닉스, 관세·투자 압박 겹쳐
한편 엔비디아는 수출 규제 통보를 받기 전인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내 AI 인프라에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약 712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TSMC, 폭스콘, 앰코, 위스트론 등 협력사들과 함께 애리조나·텍사스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주요 부품을 활용해 AI 슈퍼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SK하이닉스의 공급 구조도 이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생산한 HBM을 대만 TSMC 공장으로 보냈지만, TSMC의 미국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SK하이닉스는 미국으로 HBM을 직접 수출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품목에 고율 관세를 예고한 만큼,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타격은 불가피해진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들여 HBM 공장을 건설 중이다. 패키징 중심의 현지 생산시설로, 2028년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증설 또는 조기 가동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