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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안철수 "기성세대가 불공정 이해해야 사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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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재 양성·콘텐츠"
"의사 되면서 두 가지 정체성 가져…공익적인 마음, 문제 해결사"
"의대, 불공정 이슈 있어…기준 확 낮추는 자체가 불공정"
"점을 연결하는 것이 인생…현실에 근거한 정책 만들 수 있게 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사회통합을 위해 '기성세대의 불공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13일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든 불공정 이슈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며 "그걸 이해해야지만 세대통합·사회통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했던 것을 언급하며 "그때 한국 청년들이 굉장히 반발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식 과정을 거쳐서 한국 하키 선수단이 됐는데, 갑자기 북한과 합치면서 반을 떨어트렸다"며 "그걸 기성세대들이 상상을 못 했던 거다. '남북 간에 합치는 게 중요하지, 어떻게 이게 불공정이냐' 생각했던 건데, 그게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짚었다.

안 의원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불공정 이슈가 있다"며 "(의대생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의대에) 합격했는데, 바로 그다음 해에 기준을 확 낮춰서 들어오는 자체가 굉장히 불공정한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 의원은 부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백신을 개발했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안랩)를 설립했다.

안 의원은 2012년 9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권에 입문했고,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국민의당 대표를 맡았다. 안 의원은 지난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으며, 지난해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DB]

다음은 안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김가희 기자, 이하 김 기자)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뉴스핌 김가희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해 주실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김 기자) 오늘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첫 질문은 가볍게 근황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요즘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철수 의원, 이하 안 의원) AI 특위 위원장을 하느라고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의원 수도 15명이 배정돼 있기 때문에 각자 일들 나눠주고 계속 체크하고 정부 부처 만나고 바쁘게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최 교수) 좀 소개해 주시죠.

▲(안 의원) 예. 네 가지 분야로 나눴습니다. AI에서 가장 중요한 게 우선 첫 번째는 하드웨어, AI 칩이 있어야지 계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가 소프트웨어입니다. 특히 이번에 미국의 딥시크 쇼크를 봐서 알 수 있듯이 저가 성능의 하드웨어로도 소프트웨어만 훌륭하면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다. 그걸 보여줬으니까, 우리도 거기에 따라잡아야죠. 그다음 세 번째가 인재 양성입니다.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인재밖에 없으니까, 인재를 제대로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네 번째는 콘텐츠입니다. AI를 제대로 하려면 IT에도 투자해야 되지만, 인문학에 투자를 늘려서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일이 필요하고, 특히 조선시대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한자로 돼 있고 그 내용을 모르는 무수한 좋은 대한민국의 콘텐츠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번역하는 일 이런 것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4가지 분야로 나누고 있습니다.

-(김 기자) 의원님은 마라톤 관련 책을 쓰실 정도로 마라톤 애호가로도 잘 알려져 계시잖아요. 요즘도 달리기하고 계세요?

▲(안 의원) 처음에 제가 마라톤 시작한 게 제 딸 때문입니다. 외동딸이 있는데요. 뛰기를 좋아해서 아침에 뛰러 나간다고 하는데 너무 새벽이라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돌봐줄 겸 해서 같이 나갔는데 제가 100m도 못 뛰고 헐떡거리면서 오히려 쫓아가기가 힘든 걸 보고 딸이 앞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는 그 광경이 아직도 기억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이렇게 익숙해지고 재작년에는 제가 춘천 마라톤 풀코스 완주했고요. 작년에는 JTBC 풀코스 완주하고 이번에 바로 다음 달이죠. 동아 마라톤, 서울 마라톤이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만 거기 풀코스 지금 신청하고 연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 기자) 마라톤하시다 보면 사실 시민분들하고 직접 만날 일이 굉장히 많으시잖아요.

▲(안 의원) 너무 많습니다.

-(김 기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안 의원) 많습니다. 저는 주로 분당에 있다 보니까 분당 중앙으로 탄천이 흐르거든요. 탄천을 중심으로 해서 뛰다 보면 굉장히 많은 분들을 뵙니다. 거기 산책 오신 분들이 저 알아보고 말을 걸기도 하고 사진 찍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10분 동안 민원을 말씀해 주시기도 하고 그런데 저는 그게 굉장히 좋은 대화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책을 좀 읽어보고 또 TV 인터뷰하시는 거 보면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신 걸로 아주 유명합니다.

▲(안 의원) 한글을 떼면서부터 책을 손에 놓은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뭐 그때만 해도 전집류를 파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요. 저희 아버님이 친구분이 전집류 이렇게 갖고 왔을 때 거절을 못해서 사주시곤 하십니다. 전집류 상자를 제 책상으로 삼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 읽은 적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말 뭐 종류 가리지 않고 다 본 것 같은데 그게 제 삶의 지평을 굉장히 많이 넓힌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카뮈의 페스트도 봤으니까요. 약간 조숙했던 편인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의 독서가 어떻게 보면 지금 안철수, 미래의 의사 그리고 정치 이렇게 연결되는 꼭짓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 의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만들어진다. 자기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건 옛날에 읽었던 책에서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생긴 생각이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긴 생각은 아니다. 그런 말에 저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저는 책이 만들어줬다고 해도 정말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백신을 개발할 때의 상황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백신) 프로그램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할 정도로 말이죠. 그 이전에 의사이셨잖아요. 그리고 심장 연구하셨어요.

▲(안 의원) 예 그렇습니다.

-(최 교수) 심장을 연구하시다가 갑자기 백신으로 간 거는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어떻게 또 컴퓨터 언어를 배우셨습니까?

▲(안 의원) 그게 왜 그랬냐면 사실은 제가 컴퓨터를 배운 이유가 의학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 배웠습니다. 제가 했던 것이 심장이 어떻게 혼자서 박동하고 부정맥이 어떻게 생기는가. 그 연구였었거든요. 근데 그걸 분석하기 위해서는 심장에 있는 신호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분석을 해야 되는데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왜냐하면 심장은 아날로그 시그널이고요. 그다음에 심장은 디지털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변환하는 게 필요했어요. 그 변환하는 기계가 바로 AD 컨버터, 문제는 이 기계는 구했는데 소프트웨어가 없었던 겁니다. 제 실험을 위해서. 그래서 할 수 없이 컴퓨터 배워가지고 그 소프트웨어를 제가 만들었습니다. 제가 쓰는 의학 논문을 제대로 잘 쓰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운 겁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컴퓨터 바이러스가 나타나면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제가 보니까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또 컴퓨터였습니다.

-(최 교수) 직접 해결해 보겠다는 해결 능력이 아주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안 의원) 아 근데 그게 저만이 아니고요. 의사들이 가진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의대를 안 갔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 의사가 되면서 가진 정체성이 두 가지거든요. 공익적인 마음.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게 얼마나 고귀하고 좋은 일입니까? 그래서 그런 의사는 다들 공익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문제 해결사입니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제대로 치료해야 하니깐요. 그래서 이제 그 두 가지가 어느 사이에 제 마음속에 딱 자리를 잡혔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맞닥뜨리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문제 해결사로서의 생각 그다음에 또 이거를,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저는 무료로 나눠주고 싶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데 그걸 가지고 돈을 버는 거는 옳지 않다. 내 직업은 또 의사다 그런 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정체성이 변하지 않고 의대를 나왔기 때문에 아마도 그런 백신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 교수) 미국으로 가셔서 또 이제 다른 공부를 하시게 되죠.

▲(안 의원) 네. MBA 공부했습니다.

-(최 교수) 갑자기 경영에 관심이 가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

▲(안 의원) 그 이유가 이제 안랩 CEO를 10년 정도 하다 보니까 제가 아니라 다른 전문 경영인이 하더라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 내 인생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에 그냥 바치는 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지금 못하고 있는 영역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니까 젊은이들 그리고 어려운 벤처 기업들 도와주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근데 제가 당장은 도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 회사를 경영하는 건 나름대로 잘했는데 이게 다른 분야에 적용이 되기가 힘들고 또 체계화가 덜 돼 있으니까 '아, 이게 공부가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제가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요. 그러면 MBA를 가서 경영학 석사를 하면서 제대로 범위도 넓히고 체계화를 하자 이렇게 생각해서 40이 넘은 나이에 토플 시험 치고 GMAT 시험 새로 쳤습니다. 근데 다행히 GMAT 시험이 하버드도 갈 정도로 잘 나와가지고요. 그래서 그때 저한테 익숙했던 와튼스쿨로 가게 된 거죠. 뭐 딴 말입니다만 지금 와튼스쿨 동문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 두 사람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하고 일론 머스크입니다. 근데 어쨌든 거기 가서 공부하고 난 다음에 2년 동안 제대로 익혀서 카이스트의 교수로 돌아온 거죠.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전에 있는 수많은 어려운 여러 벤처 기업들을 무료로 컨설팅해 주고 그런 일들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최 교수) 워낙 머리가 좋으신가요? 아니면 노력형인가요?

▲(안 의원) 저는 노력형입니다. 사실 저 백신 만들 때 잠을 거의 못 잤습니다. 7년 동안. 그러니까 제가 그때 의과대학 박사 과정 첫 학기 때, 1988년에 처음 바이러스가 나타난 걸 치료하게 됐는데요. 그 이후로부터 7년 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까지 3시간 동안 컴퓨터 바이러스 분석하고 백신 만들고 나머지 시간은 의학 연구하느라고 시간을 쓰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제가 머리가 좋은 거라기보다는 잠을 좀 적게 잤던 타입이었습니다.

-(최 교수) 또 가지고 계시던 재산도.

▲(안 의원) 네 절반 기부했습니다.

-(최 교수) 절반 기부해서 1500억 정도를 기부하셨고요.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안철수 신드롬'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할 정도로 정말 대단하다, 노력형이기도 하고 정말 뛰어나고 업적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나 봉사에 대한 눈이나 이런 것들이 말이죠. 한국 청년들이 아주 열광을 하는 그런 시대가 있었었는데 그 당시를 회상하시면서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 당시는 어땠습니다.

▲(안 의원) 사실 제가 유명해지고 이런 거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충실히 하고 또 사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저도 사회 구성원의 한 일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카이스트 교수를 하던 어떤 날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무릎팍 도사라는 프로그램 작가인데 나와 달라고 해서 제가 거절했습니다. 근데 이제 문제가 뭐냐 하면 1년 내내 전화를 하는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저는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너무 귀찮아서 학생들한테 물어봤습니다. 무릎팍 도사라는 데서 자꾸 저보고 나오라고 하는데 학생들한테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니까 애들이 '선생님 나가세요. 요즘 많이 봐요' 막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나가면 이제 다시는 안 부르겠지' 사실 그런 마음으로 나간 겁니다. 근데 그게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아까 말씀드린 신드롬에 가까운 그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의도도 전혀 없었습니다.

-(최 교수) 그렇게 해서 처음 이제 시작하셨군요.

▲(안 의원) 네.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최 교수) 제가 이제 기억하기론 박경철 의사였나요. 같이 청춘 콘서트라는 걸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그렇게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유가 뭘까요? 왜 청년들이 열광했을까요?

▲(안 의원) 사연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때 카이스트 교수였는데 학생 하나가 저한테 상담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부모가 기계공학과를 가라고 했는데 지금 2학년이 됐는데 아, 이거 가지고 내가 평생 못 살겠다. 그런데 이 2년이라는 세월이 그 나이 때는 굉장히 긴 세월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막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도 안타까워서 나름대로 다독였는데 그게 그 학생한테 그렇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 아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고민하면서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다음에 또 연락이 왔습니다. 카이스트 바로 옆에 충남대가 있거든요. 근데 충남대 학생이 또 저보고 좀 상담하자고 왔습니다. 근데 그때는 제가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 학생 눈높이에 맞춰서 내가 그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갑자기 막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학생이 뭘 괴로워하는지가 확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학생이면 내가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눈물 닦고 가더라고요. 근데 그게 소문이 나서 거의 하루에 10통씩, 나중에는 100통씩, 1년에 3천 통씩 요청이 왔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만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래서 시작한 게 청춘 콘서트입니다. 오히려 직접 찾아가서 그 수많은 학생, 그때 제일 처음 찾아갔던 데가 바로 옆에 있는 충남대였었는데요. 1800명 강당인데 3천 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다 앉고, 모자라 가지고 계단에 앉고, 모자라 가지고 강단에 다 앉고, 그래서 겨우 채웠었는데요. 저는 참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게 이렇게 1 대 3000이 1 대 1의 개인 개인에게 이야기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최 교수) 지금 청년들과 그 당시 청년들과 눈높이가 달라졌을까요?

▲(안 의원) 많이 다릅니다. 사회 현상으로 대표적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게 지난번에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북 하키 선수단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때 한국 청년들이 굉장히 반발했죠. 그러니까 정식 과정을 거쳐서 한국 하키 선수단이 됐는데, 갑자기 북한과 합치면서 반을 떨어트렸거든요. 이건 불공정이다. 그걸 기성세대들이 상상을 못 했던 겁니다. '남북 간에 합치는 게 중요하지, 어떻게 이게 불공정이냐' 이렇게 생각했던 건데 그게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의대생들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의대생들 갑자기 2천 명을 늘리면서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갑니다. 근데 이야기를 해보면 그게 다는 아니지만 불공정 이슈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은 같은 제도 하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합격했는데, 바로 그다음 해에 그 기준을 확 낮춰서 들어오는 그 자체가 서로 굉장히 불공정한 거 아닌가 또 이런 마음이 있는데, 아마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불공정 이슈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근데 그걸 이해해야지만 세대 통합·사회 통합이 저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김 기자) 의원님 하면 '직업 부자'로도 유명한데 경험해 보셨던 5가지 직업 중에 가장 어려웠던 직업은 뭘까요?

▲(안 의원) 제가 처음에 의사였었고 지금도 의사 면허 갖고 있죠. 지금 병원 개업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병원 개업하면 사람이 안 오고 컴퓨터 갖고 올까 봐 그게 좀 걱정인데. 두 번째로는 이제 IT 전문가, V3 제일 처음 만들었던 그런 사람이었고. 세 번째로는 안랩이라는 기업을 창업해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IT 보안 회사로 지금 판교에 있죠. 그다음 네 번째로는 제가 대학교수를 했는데 저는 참 고마운 게 굉장히 다양한 대학교수 경험을 했습니다. 대학 교수를 3번을 했거든요. 제일 첫 번째는 단국대 의대 교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지방 사립대가 이런 문제가 있구나' 이런 것들을 잘 알 수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제가 카이스트에서 경영학 교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는 과학기술부 산하 대학이니까 교육부 산하와 어떤 점이 다르다. 이런 것들을 알 수가 있었고요. 세 번째로는 서울대를 갔습니다. 서울대 교수를 하면서 국립대가 가진 문제점들이 이런 것이구나, 다 경험했던 것이 저한테는 참 뜻깊고요. 그다음에 이제 다섯 번째로 정치를 하고 있는데 사실 5개 중에 정치가 제일 어렵죠. 문제도 제일 많고요. 옛날엔 그랬습니다. 사실 의사 하다가 갑자기 컴퓨터 백신 벤처 기업을 하다 보니까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마치 점을 찍는다고 할까요. 서로 연결이 안 되는 점을 찍는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그전에 지식이나 인맥이나 이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고 새롭게 만들어야 되니까요. 저희 직원 중에 한 사람이 건강 상담하러 오면 그거 해주는 정도, 그 정도였습니다. 그다음에 제가 했던 게 기업인데 개발자하고 기업가는 다르거든요.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대학 교수도 연결이 안 되죠. '나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살까. 왜 이렇게 연결되지 못하는 점으로서의 인생만 계속 살까' 하다가 요즘 와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니까 정치를 하면서 보니까 떨어져 있던 점들이 전부 연결이 돼 있는 거예요. 마치 스티브 잡스가 그 말을 했죠. '인생은 Connecting The Dots다. 점을 연결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정치를 하면서 의학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기술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경영·경제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교육 개혁에 대한 것들까지도 모두 다 제대로 된 업적을 쌓고 그다음으로 옮겼거든요. 그러니까 입법 활동을 하는데 정말 현실에 근거한 제대로 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게 돼서 지금이야말로 정말 저는 이런 점들을 연결하는 Connecting The Dots로서의 삶을 살게 됐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보람을 느낍니다.

rkgml925@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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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시 청와대…낙수효과 기대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2일부터 언론 브리핑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오는 것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부근의 효자동과 통의동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을 방문해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기자와 취재원들의 만남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상인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23일 효자로 남단에서 청와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우측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눈에 들어온다. 2025.12.23 calebcao@newspim.com ◆ "낙수 효과로 장사 잘 될 것 기대 중" 이날 오전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왔다니까 기대하는게 크다"면서 "아무래도 직원들도 돌아오고 하니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어요?"라고 예측했다. A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가량 지났다고 밝혔다.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쯤 효자동에서 5년째 음식 장사 중인 김광재 청기와집 사장(62)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移轉) 전후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용산으로 가기 전에는 점심 장사로만 60~70명 정도를 받았고, 청와대 외곽을 경비서는 경찰 인력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서 "그러다가 청와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나서는 5~6개월간 관광객이 몰려들며 300명씩 받는 '특수'를 누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후에 거의 다 관람하고 나서 청와대 신비감이 떨어졌고 2년 가까이 장사가 엄청 안됐다"면서 "용산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반 토막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까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 사장과 대화하는 중간에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직원 7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들의 자리 안내를 한 후 다시 돌아와 인터뷰를 계속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저분들은 기동대인데, 낙수효과지. 근무하는 인원이 몇 천은 될 테니까. 그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시락을 맞출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겐 기회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시위 걱정? 시위대가 온다고 식당을 부수진 않으니까, 왔으면 밥이라도 한 그릇 먹겠지 우리 손해는 아닐 겁니다"라면서도 "다만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요. 막 욕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할 테니까"라고 내다봤다. ◆ "별 체감 안 되는데" 시큰둥한 반응...임대료 증가 걱정도 효자동에서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 옆 통의동 골목에서 25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60대 여성 B씨는 "솔직히 (장사가 잘 되는)체감이 아직은 안가요. 뭐 돌아오면 나아지겠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우리 집은 경찰이나 직원들이 오는 집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고. 주로 경복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찾아와요"라며 "(이전에 청와대 사람들이)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룸을 찾는지, 음식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고 오는거야. 그래서 대통령실 돌아왔다고 해도 그냥 그래"라며 얼버무렸다. 경복궁과 통의동을 가르는 효자로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76세 남성 C씨도 대통령실 복귀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상권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12월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체감이 안 가는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서 15년 장사를 했는데, 그 전에도 대통령실 직원들이나 경찰들이 우리 가게에는 오지 않았어요." C씨의 가게는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팅' 전문점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커피콩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에 이 안쪽 골목에는 비싼 한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겠죠. 그런데 용산으로 가버리니까, 그 집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옛날엔 이 근방에 카페가 5~6곳이었는데, 올해만 20곳 넘게 생겼어요." C씨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C씨의 추측으로는 올해 들어 주변 상점들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겹쳤는지, 전체적으로 월세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부근 월세가 보통 30평에 5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카페들 보면 더 큰 평수겠지만 1000만~1500만원 내는 곳도 있습니다.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장사가 안돼요. 내 나이에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월세만 내면 버티지만 다른 곳들은 걱정입니다"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시위도 두 종류가 있다"며 "무슨 노조들이 하는 시위는 매출과 관계 하나도 없고 시끄럽지만, 여러 시민단체나 각 개인이 와서 하는 시위는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난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 D씨는 "원래 여기가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용산으로 갔을 때도 큼지막한 시위는 항상 광화문에서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못 느꼈다"고 얘기했다. D씨는 "옛날 2008년에 광우병 시위를 크게 할 때는 집에 가는 길도 시위대랑 경찰에 막혀서 불편한 게 많았다"면서 "그런 것만 제외하면 동네 사는 게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와 관련해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269억원, 그 자리에 국방부가 다시 들어오는 데 238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든 비용 800억원을 합산하면 총 1300억원의 비용이 낭비된 셈이다. calebcao@newspim.com 2025-12-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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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19만명 정보 유출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 약 19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한카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신한카드는 23일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포함한 총 19만2088건의 개인정보가 신규 카드 모집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신한카드 본사 전경[ 사진=신한카드] 2025.06.18 yunyun@newspim.com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이다. 신한카드는 조사 결과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민감한 신용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맹점 대표자 정보 외 일반 고객 정보와도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해킹 등 외부 침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조사 결과 일부 내부 직원의 신규 카드 모집을 위한 일탈로 밝혀진 만큼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해당 정보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 사실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가맹점 대표자가 본인의 정보 포함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회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개별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이 '목적 외 개인정보 이용'인지, '정보 유출'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으나, 적극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 '정보 유출'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unyun@newspim.com 2025-12-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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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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