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대법원 전합 공개 변론
정부 측 "장애인활동지원법 등 장애인 지원에 최선"
오경미 대법관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라는 것인가" 지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국가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소규모 매장에 부여하지 않은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위법성과 국가배상 책임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는 23일 지체장애인 김모 씨와 이모 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등 사건 공개 변론을 진행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되는 전합은 판례 변경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중요 사건을 다루며 재판장은 대법원장이 직접 맡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은 장애인의 공공이용시설 접근권 보장을 위해 제정됐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 범위를 정한 대통령령 시행령은 편의점과 같은 소매점에 대해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경우에 한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장애인등편의법과 시행령은 1998년 4월 처음 시행됐으나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약 98% 정도가 편의시설 설치 의무에서 면제됐고 이는 2022년 4월에서야 개정됐다.
이에 김씨 등은 해당 시행령이 대부분 편의점의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했음에도 국가가 이를 개정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재판에선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무엇인지, 국가의 불법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국가 배상 책임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지 등이 쟁점이다.
원고 측 이주언 변호사는 "쟁점 규정은 입법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접근권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 이는 모법의 위임범위를 일탈하고 행정입법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이러한 위헌·위법적 쟁점규정은 제정 즉시 또는 늦어도 3년이 지나서는 개선이 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피고 측 이산해 변호사는 장애인 접근권 강화를 위해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되는 등 장애인등편의법이 87차례 개정됐고, 장애인활동지원법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애인국의 1년 예산 중 약 50%가 사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족하나마 정부는 장애인 접근권을 포함한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오경미 대법관은 "국가가 매년 거액을 장애인 활동 지원에 투입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해당 장소에서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인데 이동만 시켜주면 뭐 하는가. 시설 접근권이 확보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이 소규모 소매점 등에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을 '대체되는 권리'라고 말한 것에 놀랐다"며 "활동지원인을 붙이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참고인으로 나온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팀장은 "(장애인이) 이동하고 목적지에서 필요한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도 추구하는 바이나, 정부는 공공영역이나 규모가 큰 시설부터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방안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부는 면적 구분 없이 공공의 영역에서 장애인 등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2008년부터 해오고 있고, 소규모 매장에 대해서도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향후 6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할 때 소매점 등에 대해서도 강화하는 방안으로 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국가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원고 측 이온달 변호사는 "행정입법부작위는 장애인의 접근권 침해의 근본적 원인이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했을 때부터 이미 발생이 예정된 결과"라며 "이에 불법 확인을 위한 상징적 배상이 필요하고, 규범적으로 국가가 행한 불법의 상응하는 위자료가 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행정입법부작위에 대해선 사실상 유일한 사법적 통제 수단이며, 국가배상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국회의 입법이 축소될 우려도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고 측 유일한 변호사는 "원고는 행정입법부작위로 인해 접근권 침해가 존재하고 정신적 손해가 발생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접근권 침해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앞서 1·2심은 국가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고의·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국가배상책임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전합은 최종 토론 등을 거친 뒤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