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속인, 유언 통해 상속권 상실 의사 표시 가능
유언 없을 시 공동상속인이 상속권 상실 청구
법조계 "제도 실효성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홍보해야"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부모가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상속권 상실 제도, 이른바 '구하라법'을 도입하는 민법 개정안이 28일 법안 첫 발의 후 5년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은 ▲피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청구 ▲공동상속인 등의 상속권 상실 청구 ▲가정법원의 상속권 상실 선고 ▲형제자매 유류분 삭제 등이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17회국회(임시회) 제417-2차 본회의에서 간호법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2024.08.28 choipix16@newspim.com |
우선 사망한 본인인 피상속인은 부모·조부모 등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그리고 피상속인 또는 그 배우자나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그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여기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는 미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로 한정하며, 이후 피상속인이 성년이 돼도 청구가 가능하다.
피상속인의 유언이 있는 경우 유언집행자는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해야 한다. 유언에 따라 상속권 상실의 대상이 될 사람은 유언집행자가 될 수 없다.
같은 상황에서 피상속인의 유언이 없었을 경우 공동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이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그 사람에 대한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이를 청구할 공동상속인이 없거나 모든 공동상속인에게 결격 사유가 있는 경우, 상속권 상실 선고의 확정에 의해 상속인이 될 사람(후순위 상속인)이 이를 청구할 수 있다.
가정법원은 상속권 상실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및 그 밖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은 청구를 인용하거나 기각할 수 있다. 상속권 상실의 선고가 확정된 상속인은 상속이 개시된 때에 소급해 상속권을 상실하지만, 확정 전 취득한 제3자의 권리를 해치지 못한다.
아울러 이번 법 개정으로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제자매에게 유산 일부를 상속하도록 한 민법 제1112조 제4호도 삭제됐다. 이는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에 대 위헌결정을 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이다.
이번 법 개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헌재의 위헌 결정이 있었던 지난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에도 확대 적용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법 개정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CK)는 "구하라법은 우리 사회가 상속권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며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부양하고 지원해 줄 1차적 의무가 생기는데 평생 연락을 끊고 살다가 딸이 사망한 후 찾아와 상속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권리만 주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서 헌재가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제자매에게 일부 유산이 인정되는 것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단을 내렸던 것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이번 구하라법이 통과를 통해 상속과 관련된 불공정한 부분들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허정회 변호사(법무법인(유한) 안팍)도 "이번 개정을 통해 패륜적 상속인이 상속권만 행사하는 일을 방지하게 됐다"며 "상속권 상실을 위해 유언 또는 다른 상속인의 청구가 있어야 하는데, 유효한 유언의 요건이나 공동상속인의 청구권에 대해 홍보함으로써 제도가 실효성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JY)는 "'양육의 책임'의 기준이 무엇이냐 등 법적 공방이 있을 순 있다"면서도 "다만 이런 부분은 실무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보고, 사회적·도덕적으로 볼 때 특정 부모가 상속권을 갖는 게 맞느냐는 의문을 던진 부분들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민법 개정 배경에는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19년 구하라 씨가 사망한 뒤 오래전 가출한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상속권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불거졌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해당 개정안은 지난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이견으로 폐기됐다가, 22대 국회를 통과했다. 22대 첫 협치의 성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개정안은 2026년부터 시행되며,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유류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발생한 사례도 구하라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구하라 씨 사건뿐만 아니라 과거 천안함·세월호·대양호 사건 등과 같은 각종 재난·재해 이후 자녀를 부양하지 않은 부모가 재산의 상속을 주장하는 등 국민 정서상 상속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해 사회적 논란이 지속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1년 6월 부양의무를 위반한 상속인이 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 국회에서도 입법 논의를 적극 지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향후 부양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유족들이 상속재산을 온전히 물려받고,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는 상속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제도가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만전을 기하고, 앞으로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하도록 상속제도를 개선해 정당하고 합리적인 상속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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