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군사동맹 탄생' 강조한 푸틴과 김정은
실제 공식 협정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군사동맹인지 여부보다 북·러의 운용이 관건
한국의 30년 對러시아 외교는 일거에 물거품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세계의 관심은 즉각적으로 '달라진 북·러 관계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쏠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협정에 대해 "중대한 사변'이라며 "조·로(북·러) 관계 발전의 분수령이며 북·러 관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약"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 두 나라 사이 관계는 동맹 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며 북·러가 동맹국이 됐음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동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도 "오늘 서명한 조약은 무엇보다도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힘으로써 보통의 군사동맹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유사시 자동적 군사개입'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양 로이터=뉴스핌] 최원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이 19일 오전 평양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숙소인 금수산영빈관으로 안내하고 있다. 2024.06.20. wonjc6@newspim.com |
두 사람의 발언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어쨌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북·러 간에 강력한 군사동맹이 체결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실제 협정 원문이 공개되지 않아 어떤 문안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에 새로 체결한 협정의 공식 명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다. 이 용어 자체로만 보면 북·러 관계는 군사동맹보다 낮은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높은 수준의 군사동맹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전세계가 주목한 초대형 외교 이벤트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전세계를 '오디언스'로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북한 주민과 전세계를 상대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협정 내용을 과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 푸틴 방북을 계기로 군사동맹이 됐는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두 나라는 이번 협정 체결 전부터 군사동맹과 다름없는 군사적 지원을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협정에 군사 동맹임을 명시하는 표현이 없다고 해도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군사동맹이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이 아님에도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의 캠프데이비드 선언으로 군사동맹이 할 수 있는 모든 조건과 원칙을 마련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북·러는 이번 협정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가 실제로 강력한 군사동맹으로서 서로의 역할을 할 것인지 여부는 두 나라의 의지에 달려있다. 북한은 동맹국 역할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고 러시아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미국과 서방을 상대할 수 있는 유연하고 신축성있는 지렛대를 가진 셈이다.
만약 이 정도의 결과라면 당초 한국이나 미국이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항하기 위한 '반미 연대'를 결성했다는 것, 이 때문에 미국의 세계 전략에는 중대한 도전 요소가 추가됐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한·미·일이 군사협력을 고도화시키는 작업을 할 때 이같은 반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는게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는 점이다. 북·러 관계에서 일어난 지금의 '사변적 변화'는 김 위원장이 말한대로 캠프 데이비드 선언 이후 불과 9개월만에 전광석화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그리고 높은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이 지난 30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러시아와의 관계를 일거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한국이 갖고 있던 입지를 북한이 대체하도록 만들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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