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영국 스타일의 시장 쇼크"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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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상용 글로벌경제 전문기자 = 미국 의회예산국(CBO) 수장이 `방만한 재정운용을 계속하다가는 지난 2022년 가을의 영국 꼴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풀어 오르는 재정적자와 자가증식하는 국가부채 때문에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자칫하면 시장의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채권시장 자경단에 시달렸던 1980년대의 기억과 2년전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이 겪었던 굴욕사를 소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주일전 CBO가 공개한 미국의 장기 재정 추이는 더 암울한 미국의 부채 전망을 담았다.
1. 나는 시장이 무섭다
미국의 초당파적 예산정책 자문기구인 CBO의 필립 스와겔 국장은 3월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미국도 지난 2022년 가을 영국이 겪었던 것과 같은 시장 쇼크를 겪지 않을까 겁난다고 했다. 스와겔 국장은 "미국의 부채는 전례없는 궤적을 그리며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필립 스와겔 국장 [사진=블룸버그] |
불어나는 부채와 재정적자를 계속 무시하다가는 2022년 영국 트러스 내각이 경험했던 길트(영국 국채)와 파운드 가치 폭락 등의 위기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스와겔은 "미국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오는 2026년 국채 이자를 충당하는 데 치러야 하는 비용만 1조달러에 달하게 되면서 채권시장이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다(snap back)"고 우려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새로 1조달러 빚을 내야만 하는 국가부채의 자가증식 동학으로 인해 언제든 계기가 주어지면 시장이 흉폭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해질 수 있는 몇가지 변화가 금리에, 나아가 재정의 궤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위험)성을 우리는 안고 있다"고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재무부에서 일했던 스와겔은 "내년은 재정정책에 있어 특히 중요한 해"라고 했다. 트럼프 감세의 일몰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의료 보조금 정책의 일몰이 도래한다. 두가지 모두 정치적으로 아주 논쟁적인 사안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되면 자신의 감세정책을 연장(사실상 영구화)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2. 英 트러스 총리의 45일 천하
영국 경제지(FT) 면전에서 영국 정치사의 대굴욕을 입에 올리는 게 겸연쩍었을지 모르나 스와겔 국장으로선 2022년 영국 사태 - 일명 `Sell UK(영국 매도)`사태 - 만큼 적절한 각성제도 없을 게다.
그 해 가을 `제2의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을 표방하며 트러스 총리가 야심차게 내걸었던 트러스노믹스는 대규모 감세와 에너지 부문 정부 보조금 지급을 골자로 했다. 국민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생산성을 높이는 공급측면 개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문제 모두를 풀어보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트러스의 대규모 감세는 시장에 의해 철저히 거부당했다.
하필 때를 골라도 최악의 타이밍에 역사에 남을 악수를 뒀다. 영국의 인플레이션은 40년만에 최고치로 치솟고 있었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재정적자와 부채는 한껐 부풀었다. 영란은행(BOE)은 미쳐날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중이었고 `적극적` 양적긴축(QT) - 만기도래전 보유 국채 매각 - 을 전개하려던 참이었다.
가뜩이나 영국 국채시장이 인플레이션과 BOE 긴축행보에 신경이 곤두섰던 차에 갑작스레 등장한 팽창적 재정정책이었으니 불 구덩이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감세 재원과 에너지 보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더 늘리겠다 하니 - 국채 공급을 늘릴 것이라 하니 - 길트(영국 국채) 수익률이 솟구쳤다. 길트 가격 급락(길트 수익률 급등)에 연기금들의 포지션이 꼬이며 국채 시장의 공포심은 커져갔다. 자산시장의 근간(10년물 벤치마크 금리)이 흔들리자 파운드로 표시된 모든 게 휘청였다. 외환시장에서 파운드 가치가 급락했고 런던 증시도 휘청였다.
2022년 가을 영국 국채시장 쇼크 당시 10년물 길트 수익률(파란색)과 FTSE100지수(주황색) 파운드-달러 환율(보라색) 추이 [사진=koyfin] |
폭발적이고 전면적인 `Sell UK(영국 투매)`에 트러스 총리는 부랴부랴 재정정책을 철회했고 그걸로도 부족해 결국 45일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영국이 불러온 글로벌 국채시장 소동 - 길트 수익률 급등은 유럽 전역을 휘감고 미국과 일본의 국채시장까지 뒤흔들었다 - 은 그해 10월 연준의 시장 달래기와 주변국 중앙은행들의 공조가 이뤄진 뒤에야 수그러들었다.
강렬했던 당시 장면은 스와겔 미국 CBO 국장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스와겔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이 항상 시장 압력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해외로부터 자금을 빌려야 한다. 해외 자본은 미국의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을 돕는다. 다만 여기에는 두가지 고려할 측면이 있다. 이자지급액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국가 소득의 상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해외 자금이 유입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재정 건전성 훼손과 화폐의 신뢰 상실로 인해 외부로부터 자금유입이 끊어지면 금융시장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해당한다.
osy7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