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간소화한 현대화 제사상 권고안 발표
2030세대 "형식보다는 가족의 화목이 중요해"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국내 유교 중앙본부 역할을 하는 성균관이 제사상을 간소화하고 가족이 다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냈다. 최근 제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위원회)는 2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사 음식을 줄이고 제사를 줄이는 이들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내놓았다.
위원회는 기제(忌祭·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와 묘제(墓祭·3월 상순 고조(高祖) 이하 조상의 묘에서 지내는 제사)는 제사상 신설 방식을 제안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된 국가 최고의 제례공간 중 하나인 사직단의 전사청(典祀廳) 권역이 복원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선이 종묘와 함께 가장 중요시한 사직단의 전사청 권역 복원공사를 마무리해 10일 개관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의신(社)과 곡식의신(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고, 전사청은 전사관이 머물며 제례 준비를 총괄하는 공간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사직단 전사청 사직대제의 제사상 모습. 2022.05.10 mironj19@newspim.com |
기제의 경우 과일 3종과 밥·국·술에 떡, 나물, 나박김치, 젓갈(식해), 식혜, 포, 탕, 간장 등을 곁들이는 것을 예시로 했다. 묘제는 술, 떡, 포, 적(생선이나 고기 등을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불에 굽거나 지진 음식), 과일, 간장을 올려 더욱 간소화했다.
위원회는 고인의 자녀가 협의해 제사 주재자를 정하되, 성별에 상관없이 가장 연장자가 맡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위원회가 제사 간소화 방안을 제안한 것은 제사 관습에 대한 20·30세대의 거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위원회가 만 20세 이상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제례 문화 조사)'에서 응답자 응답자의 55.9%는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제사를 지낸다고 답한 이들이 62.2%인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제사를 이어가는 가정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20·30세대 성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 "구태한 제사 관습이 가정불화를 일으키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하모(27)씨는 "제사는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하는 거다"라며 "형편에 맞게 제사를 지내면 되는 거지 의무감에 해야 한다면 기쁘지 않을 거 같다"고 밝혔다.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최모(27)씨 역시 "비단 제사뿐만 아니라 오래된 관습으로 불화나 논쟁이 생기는 것을 자주 접한다"면서 "허례허식으로 가족 간 불평등한 위계가 생기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제례 문화 조사에서도 '제사를 왜 지내지 않으려하냐'는 질문에 "간소화하거나 가족 모임 같은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41.2%)와 "시대의 변화로 더는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27.8%)가 주된 답변으로 꼽힌 바 있다.
일부 시민들은 형식보다는 제사의 본 취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올해 추석 서울시 금천구에 거주 중인 이모(25)씨 가족들이 차린 제사상. [사진=독자 제공] 2023.11.02 dosong@newspim.com |
서울시 금천구에 거주하는 남성 이모(25)씨는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음식 준비를 도우려고 해도 되려 혼나기 일쑤다. 제사로 인해 가족들이 부담을 가지면 본 취지에 어긋날 거 같다"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차후 제사를 지내더라도 안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꾸준히 제사를 챙길 것이라고 전한 직장인 양모(25)씨 역시 "핵가족화 되어가는 시대에 제사 때 조상을 기리고 가족애를 느끼는 것이 본 취지에 맞지 않나"라며 "사실 마음만 있으면 제사상에 피자, 샤인머스캣 올리는 게 뭐가 대수냐. 꼭 권고안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권고안을 발표하며 "제사의 핵심은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함에 있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는 가족이 모여 안부를 묻고 화합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며 "제사상은 간단한 반상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더 올리거나 생일상처럼 차려도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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