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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⑩성차별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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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라떼맘마 - 라떼파파 사회, 성평등 국가의 고민

스웨덴에 살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들을 접하고 난감한 경험이 적잖다. 전화벨 소리에 받아 보니 한 여학생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갑자기 그 동안 한 번도 들어 보지도 못한 단어를 섞어 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바바 때문에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체면에 모른다고는 할 수 없어 맥락으로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뜻이었기에 알았다고 하고는 통화 후 사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발음으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Vava, vaba, bava, baba, vavva, babba, 등 수많은 단어가 조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문맥을 다시 상기하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라는 뜻을 풀어서 찾아보니 드디어 맞는 단어가 하나 나왔다. 나의 촉은 정확했다. Vabba라는 단어였다. 스웨덴어의 돌보다(vårda)와 아이(barn)의 합성어였다. 그 이후부터 사회보험 이야기를 할 때 '바바'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육아와 관련 새로 생겨나는 단어들

비슷한 경우로 보바(bobba)라는 단어도 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의 뜻인 '바바'와 '일하다'(jobba)라는 단어와 함께 만들어진 합성어다. 코로나 때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돌본다는 뜻으로 학부모들이 많이 사용한 단어라 한다. 며칠 전 2월이 시작되는 어제 아침뉴스에서 보브르아리(vobruari)를 주제로 이야기 할 때는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바로 알아들었다. 훈련이 이미 되어 있던 탓일까?

통계적으로 2월 들어 아이들이 독감바이러스 등으로 부모가 집에서 쉬는 날이 많아 생긴 단어인 셈이다. '바바'나 '보바'는 학생들 뿐 아니라 모든 직장에서도 통용되는 단어다. 이런 단어들이 하도 많아지니 방송이나 신문에서 종종 신조어 코너가 생길 정도다. 아이가 있는 부모에게는 쉽게 접하는 단어이지만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에는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직장인 누구나 '바바'를 위해 결근하거나 일찍 퇴근을 할 수가 있다. 국영보험국(försäkringskassan)에서 자녀돌봄을 위해 부모에게 지급하는 자녀돌봄급여가 있어 유급돌봄이 가능하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정이 많아 두 명이 모두 자녀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자주 사회적 문제가 되자 여러 당 국회의원들이 가족, 친척, 이웃까지 대체 돌봄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제출해 통과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 중 한 사람이 '바바'를 할 수 없을 경우 집에 있는 이웃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당연히 이웃은 돌봄급여를 대신 지급받는다. 자녀가 있는 한 부모 가정의 경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새로 생긴 육아 문화와 블루오션 산업

이 '바바'제도는 육아휴직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육아휴직으로 480일(평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총 18개월)을 한 자녀 출산할 때 부모가 사용할 수 있는데, 부부가 상의해 한꺼번에 다 사용해도 되지만 절약해 두었다가 아이가 12살 될 때까지 연장해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4살이 되면 96일까지만 연장된 일수를 '바바' 때 사용할 수 있다. 480일 중 90일은 출산유급휴가를 아빠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자녀양육을 위해 남성도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뜻도 되지만 새로 태어난 신생아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아빠와의 교감도 중요하다는 아동심리학자들의 조언에 따른 조치이기도 하다. 아빠가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않아 카페라테를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는 뜻의 '라떼파파 (lattepappa)'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라떼파파'와 '라떼맘마(lattemamma)'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시내중심가 카페에는 유모차를 세울 수 있도록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육아휴직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다.

육아용품도 육아휴직과 '바바' 문화에 맞춰 개발붐을 이룬다. 신생아를 데리고 조깅을 할 수 있도록 조깅용 유모차가 등장했는가 하면, 쌍둥이를 위해 2층 유모차, 세쌍둥이용 유모차도 있다. 등산이나 트래킹을 좋아 하는 부모들이 업고 이동할 수 있도록 특수 백팩 등도 인기를 끈다. 자전거 타면서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전방, 혹은 후방용 바퀴가 달린 캐리어가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고, 뒤에 자전거 안장에 앉혀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자동차용 안전시트와 비슷한 용품도 인기다. 탈부착 하기 번거롭고, 언제든 출퇴근할 때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보관소에 안전시트가 부착되어 있는 자전거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자동차도 해치백 자동차가 북유럽 젊은 부부들 사이에 유독 인기가 높다. 유모차를 싣기 위해서는 넉넉한 공간과 트렁크 문이 높게 올려 편리하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부모들의 이동권리를 보장하고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거의 모든 대중교통 버스는 저상버스다. 버스 중간은 항상 유모차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 공간을 확보해 안전벨트로 묶을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버스를 이용하면 무료다. 아이의 안전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가 요금을 내기 위해 운전석까지 이동하는 시간 동안 아이의 안전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안전을 고려한 꼼꼼한 정책의 배려를 읽을 수 있다.

꼼꼼한 육아서비스, 출산율 효과

출생 후 1년부터는 주민등록지의 최소형정구역별(예를 들어 시의 경우 동, 군의 경우 면 혹은 읍 등)로 공공어린이집을 제공해 준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구분하지 않고 초등학교 기초과정으로 한 살부터 제공한다.

1-2세 기간 동안 부모가 신청하면 4개월 이내에 어린이집을 배정받을 권리를 제공한다. 3세부터는 초등 기초교육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루 최소 6시간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설어린이집을 사용할 수 있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최대요금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택을 돕는다. 하지만 무상은 아니다. 기본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한부모가정의 경우 일정 수입 이하인 경우 요금은 면제된다. 학생, 실업자, 출산휴가 부모 등도 1-2세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가정의 경우도 최소 하루 3시간 어린이집에 보낼 권리를 갖는다. 다수의 자녀를 어린이집탁아소에 보낼 경우 명수에 따라 감액제도가 있어 부모의 부담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최대 1-2세 연령 한 명당 1645크로네(한화 약 18만원) 를 부담하고, 3세 이상은 1097크로네(한화 약 11만5000원)를 적용한다. 세 아이의 어린이집 서비스 비용은 첫째, 1645크로네, 둘째, 1097크로네, 셋째 548크로네가 적용되어 다자녀 부모들의 어린이집 비용의 부담을 줄여준다.

이렇게 꼼꼼하게 출산과 육아에 따른 어려움과 제약이 많지 않으니 젊은 부부들이 2세 출산 계획을 짤 때 큰 부담을 줄여준다. 특히 '바바' 제도는 자녀가 12세 될 때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뒤 바침 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서 일찍 데리고 가야 한다는 어린이집 교사의 연락이 오면 부모 중 한 사람이 '바바' 조기퇴근을 상사에 보고하고 나갈 수 있다. 직장에서는 집에서 대신 '보바'(재택근무하며 자녀를 돌보는 일)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황에 따라 직장에서 다른 근무자로 대처해야 한다. 이제 '바바'는 하나의 당연한 권리와 문화로 자리 잡아 육아 부모들이 직장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아픈 자녀를 돌 볼 수 있게 해 준다.

1980년 1.6까지 떨어진 출산율에 따른 비책

그럼 '바바' 제도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1970년대 초까지도 2.0에서 2.2의 출산율을 기록했지만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는 1.6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되자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노동력의 감소로 인해 미래복지재정이 함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정부조사단을 구성해 연구한 결과 다음의 결론을 지었다. 여성이 가정의 가사노동과 돌봄, 그리고 교육 등에 남성에 비해 더 많은 부담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직장 내에서 출산 및 육아 관련 여성차별이 심해 출산을 꺼린다는 결론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젊은 커플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관계를 출산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출산급여 및 육아수당 등 복지 관련 혜택을 보지 못해 출산을 꺼린다는 점도 간파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거증명만 하면 결혼부부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거법(Sambolagen, 1987년 제정)을 제정했다.

1988년 가족, 직장, 공공기관, 정치 등 모든 국가영역에서 성평등이 관철될 수 있어야 한다는 '하나 건너 여성(Varannan damernas)' 국가 조사위원회의 연구결과를 통해 1995년까지 모든 영역에 여성과 남성이 균등하게 혜택과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는 차별금지법(Diskrimineringslagen)이 1991년 제정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공공기관과 기업에 성차별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성인지 예산(성차별을 방지하고 성평등을 증진시키는데 사용되는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며, 통계산출 시 성구분을 반드시 하도록 하는 조치도 뒤따랐다. 기관 및 지방정부 등도 정부결산에 성인지 예산 및 성평등 조치 등을 반드시 보고하도록 정부지침서(regleringsbrev)에 포함시켰다. 즉 이때부터 성평등을 모든 국가영역에 적용하는 새로운 개념 성평등사회(Gender-equal society, 처음에는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으로 소개되었으나, 점차 성평등의 개념으로 교체되었음)가 일상화 되었다. 이런 전략이 젠더 메인스트리밍(Gender mainstreaming)이라는 개념으로 성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젠더 메인스트리밍이라는 단어는 1995년 UN북경여성회의 이후 채택된 개념으로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이 균점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정책영역으로 정의되고 있다.

효과는 컸다. 스웨덴이 1995년 북경회에서 세계 최고의 성평등 국가로 선정되어 UN여성대사였던 제인 폰다로부터 평등부 장관이었던 모나 살린이 감사패를 받았다. 당시 신문에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1973년 여성의원 비율이 15퍼센트였지만, 1995년 42퍼센트를 넘어 2022년 현재 47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정치 영역 뿐 광역단위와 기초의회까지도 여성의원 비율이 4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전국 국가기관, 공립학교, 국립대학 등 기관장의 비율은 여성과 남성이 균점하고 있다. 성평등 메인 스트리밍의 결과다.

출산율도 마찬가지다. 1983년 최저점인 1.6을 기록한 이후 1990년까지 연속으로 상승해 2.1을 기록했다. 이 역시 성평등 메인스트리밍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경기의 지속적 상승 등의 요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역으로 맞벌이 부부 비율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꼼꼼한 젠더 메인스트리밍의 일환인 가족정책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녀의 출산, 육아, 교육이 힘들면 출산계획을 쉽게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위기, 2000년대 초 1.5로 하락한 출산율

이번에는 경제위기가 주원인이었다. 1991년 재정위기를 맞았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주택가격 폭락, 금융기관 및 기업부도, 화폐가치추락, 실업률 상승 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어떤 정책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성평등 메인스트리밍 정책은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항상 경제위기 시기에는 약자가 더욱 큰 피해를 본다. 여성 한부모 가정, 장애인 가정 등의 특별지원, 저소득층 탁아소 비용 면제, 실업자의 경우 집에 있을 경우에도 탁아소 사용 허용, 새 직장을 찾기 위해 직업교육 및 학교수업 등에 참가하는 저소득층 여성 지원, 남성의 출산 시 가사도움을 위해 남성육아 의무 기간을 30일로 늘리고 점차 확대해 3개월까지 늘렸다. 공동 출상육아 보너스제를 도입해 육아휴직을 반반씩 사용하는 부부에게 최대 1만3500크로네(한화 약 160만원)를 각각의 부모에게 자동입금한다. 이런 노력으로 다시 2010년에는 2.0까지 출산율을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하는 듯 했다.

다양한 갈등의 원인들

모든 사회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종교, 인종, 문화, 언어 등의 차이와 이해관계와 연관된 정체성 갈등이 있는가 하면, 사회분배정책과 경제정책, 복지정책, 노동정책, 기업정책 등의 정책부재 혹은 실패에 따라 발생하는 빈부갈등, 좌우갈등, 노사갈등 등을 들 수 있다. 어떤 갈등이든 누적된 긴장관계의 정도와 특별한 도화선의 유무 (예를 들어 차별적 법제정이나 우발적 충돌사태)에 따라 물리적 충돌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어 불안정한 요소로 인식된다.

정체성 갈등과 정책관련 갈등이 연관되어 정치화된 갈등이 지역갈등, 세대갈등이다. 지역갈등은 정체성 (지방색, 지방문화)의 갈등과 정책의 결과 (예를 들어 산업화 정책)가 결합되어 발생하는 갈등이고, 세대갈등은 경제 및 정치발전과정에서 기성세대의 권위적 위상에 대한 신세대의 도전이나 복지 및 사회정책의 부재 혹은 적용 실패(예를 들어 미래세대에 불리한 연금정책, 건강보험정책 등)를 통해 발생하기도 한다.

젠더갈등은 특별한 경우다. 갑자기 새로 생긴 갈등이라기보다는 그동안 항상 존재해 왔던 정치, 경제,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기대치와 변화 요구와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의 제기는 1975년 멕시코시티 UN여성회의에서 정식 제기되었다. 그 동안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성불평등 문제를 처음으로 이슈화한 것이 이 때였다. UN 인권선언(1948), 경제-사회-문화권리에 관한 국제협약(1966) 등의 기본권에 대한 관심, 티 에이치 마샬(T.H. Marshall)이 그의 연구 '시민과 사회계급(1949)' 에서 제시한 시민3권, 즉 기본권(자기결정권, 생명권, 재산권), 정치권(투표, 참여, 표현, 사상, 결사, 재판, 청원), 사회권(경제복지, 인간처럼 살 권리, 사회적 유산의 공동소유권) 등에 명시된 자유, 평등, 정의가 남성의 전유물이 여성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개최된 것이 UN 주도의 여성회의다. 1985년 나이로비에서 10년 계획이 채택되어 이때부터 양성평등(당시에는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에만 국한함)의 구체적 실천 목표를 세웠다. 1995년 북경여성회의 이후 젠더 메인스트리밍이 채택되어 성평등의 생활화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평등의 몇 가지 제약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상, 가족 내에서 부인과 남편의 역할,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 직장 선택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 (육체노동은 남성, 서비스직은 여성과 같은 구분) 등이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평등과 자유의 실현이라는 요구가 점차 커지며 나타난 긴장관계의 심화가 젠더갈등이다. 양성평등 뿐 아니라 성의 정체성 보호와 권리증진을 두고 갈수록 민감한 대치가 이루어진다. 퀴어 문화축제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은 언제나 반대편에서 대응시위를 벌인다. 여성낙태권, 동성부부권, 동성부부 입양권, 여성 단독 입양권과 시험관아기 출산권 등도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신정국가나 전통적 사회에서는 성평등개념 자체가 금기 시 되어 있다.

민주국가에서 조차 성평등의 적용범위를 두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몇 가지 예로, 권리만큼 의무도 나누어야 하나, 쿼터제는 남성역차별인가, 군가산점은 여성차별인가 등의 이슈다. 1948년 이스라엘에 도입된 여성의 병역의무는 2013년 노르웨이, 2017년 스웨덴으로 확산되었다. 국민으로서 권리와 함께 의무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성평등이 국가적 목표이지만 쿼터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를 독려한다. 젠더 메인스트리밍을 이루기 위한 정부의 권고에 따라 자발성이 우선하지만 스웨덴의 경우 정부 예산배정 시 고려사항으로 작용하고 있어 간접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군가산점은 공정경쟁의 논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채택되고 있지는 않지만 군경력과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경찰, 소방관, 국가정보원 등의 채용시 신청자들은 군경력과 특수능력을 특이 사항으로 적시할 수 있으며 내부 채용원칙에 따라 가산점으로 사용될 여지는 있다. 채용을 둘러싸고 헌법 위배 사항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아직 없다. 채용권은 온전히 채용 당사자들의 권한에 속하며 내부스크리닝 과정은 아무도 공개를 요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공개채용 모집 공고에 군가산점을 적시하지는 못한다. 차별법에 위배되는 사항이고 헌법에 반하는 차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성평등이 민주국가의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는 이유는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국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성평등의 6가지 필수영역이 확인된다.

1. 정치적 평등, 정치권력 및 영향력의 균형
2. 경제적 평등, 경제적 자유와 자기결정권
3. 자기개발, 교육기회의 균등
4. 무급여 노동과 자녀돌봄의 공동책임
5. 균등한 건강상태, 의료접근성
6.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근절, 특히 직장과 다문화 가정의 표적 살인이나 명예살인 근절

스웨덴은 현재 위 6가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주주의 장관이 성평등 장관직을 겸하고 있다. 성평등청, 차별옴부즈만, 여성안전연구소 및 지원센터, 여성폭력전문 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촘촘한 사회보험제도와 가족정책으로 여성, 특히 자녀를 가진 여성의 지원에 적극적이다.

성평등국가의 고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 스웨덴 통계청에서 2년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성평등 통계에 따르면 스톡홀름 OMX 지수에 상장된 기업 중 10퍼센트가 여성 CEO로 구성되며, 기업 이사회의 36퍼센트가 여성임원으로 활동한다. 정치적으로는 정부와 의회에서 성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경제계는 여전히 남성이 지배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CEO의 성불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쿼터제를 적용해 최소 40퍼센트는 여성임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좌파계열 정당들은 주장한다.

재계에서는 강제성을 띤 성평등 실현은 위헌적이라고 항변하지만 일부는 적어도 정부가 최대 주주인 공기업부터 쿼터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노동시장에서도 성불균형이 지적된다. 출산휴가 10년 이내 기간 동안 여성은 50퍼센트가 비정규직(part-time employee)을 갖고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활동에서 남성보다 더 큰 책임을 지며, 출산 후 20년 기간으로 확대하면 75퍼센트까지 늘어난다. 여성이 지속적으로 불안정적인 노동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와 함께 동일직종에서 남성보다 10퍼센트 낮은 보수로 일을 하고 있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에 있고 2022년 스웨덴의 1.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성평등국가 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는 스웨덴도 여성의 불평등 문제 해소가 여전히 국가 아젠다의 최상위에 올라 있는 셈이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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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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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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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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