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착오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청각·시각 능력이 저하된 노인이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낸 경우 그 자체로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망인의 유족들이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환수고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2018.02.13 leehs@newspim.com |
앞서 망인은 지난 2020년 5월 적색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함으로써 반대편 차선에서 운전하던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고 입원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8월 사망했다.
건강보험공단 측은 이 사건 교통사고가 망인의 신호위반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에 따라 보험급여를 부당이득으로 환수한다는 결정을 고지했다.
그러자 망인의 유족들은 "망인이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해 무의식 상태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점에 비춰 보면 망인으로 하여금 보험급여 전부를 반환하도록 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부당이득금 환수고지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교통사고가 망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뤄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이 사건 교통사고 당시 만 77세의 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 비해 청각 및 시각 능력이 저하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운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거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뒤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망인의 연령과 건강상태, 이 사건 교통사고가 발생한 당시 비가 내리는 새벽시간이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망인이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착오로 정지신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교차로에 진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중대한 과실이란 통상인이 약간의 주의만 했더라도 손쉽게 위법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이를 간과하고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말한다"며 "단지 신호를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이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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