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맞았다. '펫티켓', '펫테크' 등 반려동물 문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애견미용사', '동물보건사' 등 반려동물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물 학대 및 유기 사건이 발생하고, 반려동물을 둘러싼 이웃갈등까지 벌어지는 등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반려동물 관련 법과 제도는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뉴스핌은 반려동물 관련 논란을 심층 분석하고, 반려동물과 상생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고자 기획 보도물을 마련했다.
[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 #. 서울 강서구에 사는 '캣맘' A씨는 지난달 B 요양원을 절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요양원 인근 공원에 마련한 길고양이 밥그릇이 자꾸 사라지는 것을 참다가 강력하게 대응한 것이다. A씨는 평소 요양원 직원들이 길고양이를 탐탁잖게 생각한 점, 인적 드문 밤에 놓아둔 밥그릇이 10분도 채 안 돼서 사라진 점 등을 고려해 B 요양원을 고소했다. A씨는 "길고양이를 돌보다 보면 하루하루가 투쟁"이라고 말했다.
◆ 반려동물도, 야생동물도 아니지만 공존…"방치 아닌 관리 필요"
29일 일선 지자체 등에 따르면 서울시가 2년 단위로 '길고양이 서식 현황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길고양이 개체 수는 ▲2013년 25만마리 ▲2015년 20만마리 ▲2017년 13만9000마리 ▲2019년 11만6000마리 등으로 집계됐다. 중성화 수술의 성과로 해마다 줄고 있지만 여전히 10만마리 이상의 길고양이가 거리를 떠돌고 있다.
[광명=뉴스핌] 박승봉 기자 = 19일 오전 10시쯤 경기 광명시 목감천 인근 한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길고양이에게 까마귀들이 모여들고 있다. 2019.12.19 1141world@newspim.com |
길고양이는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도, 온전히 야생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도 아닌 인간과 도시에서 공존하는 존재다. 고양이는 독립심이 강하고 야생성을 갖고 있어 도시 환경에 적응해 거리에서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거리에 적응하기 힘든 개와는 다르다.
거리에 적응한다고 해도 길고양이의 삶은 녹록치 않다. 하루하루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 관계자는 "길고양이는 로드킬, 학대, 고양이들 간의 싸움, 질병 등으로 인해 힘들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며 "빠르게 도시화하면서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원래 고양이들이 살던 마당 툇마루 밑, 화단 구석 등이 없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른바 캣맘이나 캣대디도 늘고 있다. 길고양이 보호단체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회원 수는 이날 기준 9만6258명이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캣맘·캣대디까지 포함하면 길고양이를 돌보는 시민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길고양이와 캣맘·캣대디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학대, 폭행 등 혐오 사건도 발생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캣맘·캣대디를 대상으로 하는 폭행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카라에 따르면 지난 6월에도 서울 중랑구 모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한 남성이 생후 2주령 새끼고양이가 쉬고 있던 쉼터를 집어 던지고 캣맘의 얼굴에 물건을 던진 사건이 발생했다. 카라는 탄원서를 걷은 뒤 해당 남성을 동물보호법 위반, 폭행, 재물손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캣맘에 대한 편견이 박해 수준으로 너무 심하다"며 "일각에서는 캣맘들 때문에 길고양이 수가 늘어난다고 불만인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쓰레기를 뒤지거나 배설물이 방치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길고양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편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인식 개선 및 공존 대책 마련 시급…중성화 사업·고양이 급식소 대표적
전문가들은 길고양이와 캣맘에 대한 혐오를 줄이기 위해 근본적으로 길고양이가 방치되고 버려진 동물이 아니라 관리되고 보호받는 동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 대표는 "공권력을 활용하거나 길고양이 돌보는 일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캣맘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캣맘의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한 행위이며 막무가내로 금지할 수 없다는 인식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길에 버려진 고양이. [사진=동물권단체 케어 페이스북 갈무리] 2021.10.29 heyjin6700@newspim.com |
동물보호법 제3조 제2호에 의하면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할 때는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물보호법 제7조 제1항에서도 캣맘 등과 같이 동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행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밥그릇을 부수거나 버릴 경우 형법상 손괴죄나 절도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길고양이와 공존을 위해 서울시 등 지자체도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8년 '길고양이 돌봄 기준'을 만들고 ▲길고양이 군집 별로 70% 이상 중성화 수술시켜야 하고 ▲먹이 급여 시 전용 사료와 깨끗한 물을 용기에 담아 공급해야 한다 등의 권고사항을 마련했다.
지난 2008년부터는 중성화(TNR) 사업도 시행 중이다. TNR(Trap-Neuter-Return)은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다시 방사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자치구가 길고양이를 포획한 단체, 개인, 수술을 진행한 동물병원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뤄진다. 자치구 인력으로는 길고양이를 포획할 수 없어 연초마다 캣맘·캣대디를 자원봉사자로 모집하는 곳도 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중성화 사업은 번식력 강한 고양이의 개체 수 급증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라는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중성화 수술을 함으로써 무분별한 번식을 막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체 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기대 수명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대책으로 여겨진다.
'고양이 급식소' 운영도 인간과 공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안으로 꼽힌다. 깨끗한 사료와 물을 제공할 수 있어 길고양이들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다. 정해진 곳에서 먹이를 공급하기 때문에 고양이들에게도 안전하고,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양이를 마주할 위험도 줄어든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동물보호 조례 제21조 4항을 통해 시장 또는 구청장은 길고양이의 효과적인 개체 수 조절과 쾌적한 도시 환경을 목적으로 생활공원 중 소공원 및 근린공원에 급식소를 설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아울러 캣맘·캣대디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일부 캣맘·캣대디들 중 고양이를 위한다고 아무 데나 먹이를 뿌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고양이들이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먹이를 먹게 돼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 대표는 "캣맘·캣대디들에게 올바르게 고양이를 돌보는 법 등을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며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배려하면서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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