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지난 16일 오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기이한 장면을 봤다. 부동산 관련 위법 의혹으로 경찰 조사 대상에 오른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송민헌 경찰청 차장에게 현안 질의를 했다. 부동산 관련 질문은 아니었다.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는 오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오히려 신속히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촉구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자진해서 관련 자료도 제출했다. 의혹만으로 오 의원이 의정 활동을 못하게 막아서는 안 된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 의원이 국민을 대표해 경찰청을 감시·견제하는 일을 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할 의원이 피감기관인 경찰의 수뇌부에게 질의하는 광경에 우려도 든다. 경찰이 의원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이런 기이한 광경은 앞으로 국회에서 계속봐야 할지도 모른다. 경찰청을 감시할 국회 상임위에 행안위 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도 있어서다.
한태희 사회문화부 기자 |
예결위는 경찰청을 포함해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을 제대로 썼는지 감시한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깎거나 늘리는 등 예산안 심의도 한다. 예결위는 이듬해 경찰청 예산을 감액하거나 증액할 수 있다. 경찰이 예산을 넉넉히 확보하려면 예결위 의원에게 소위 말해 밉보이지 말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막강한 권한을 갖는 예결위에 부동산 위법 의혹을 받는 의원이 여럿 포진해 있다.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는 양이원영 의원(민주당), 업무상 비밀이용 의혹을 받는 김한정·서영석 의원(민주당),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정찬민 의원(국민의힘) 등이다. 얼마 전 무혐의로 결론난 양향자 의원(민주당)도 예결위에서 활동한다. 경찰청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의원을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투기 의혹 수사가 길어지면 경찰과 의원 입장이 180도 바뀔 수 있다. 수사를 받아야 할 의원들이 오히려 경찰을 추궁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반기에는 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해 경찰청을 감사하는 국정감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행안위에서 활동하는 의원 중 부동산 관련 의혹 연루자가 더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국민의힘이 소속 의원 102명의 부동산을 전수 조사해달라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해서다.
앞서 민주당 의원 174명에 대한 권익위 전수조사가 약 두 달 넘게 걸렸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조사 결과는 8월 전후에 나온다. 권익위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경찰이 조사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투기 의혹 수사는 올 하반기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이런 기이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수사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의원을 압수수색하고도 소환 조사 일정도 못 잡거나, 구속영장 재신청 카드를 계속 만지작 거려서는 안 된다. 현재 경찰 내·수사 대상에 오른 의원은 23명이다.
경찰은 투기 의혹 등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하다는 방침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경찰이 의원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기우였음을 경찰이 수사 결과로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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