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10.7% 지분 확보…현재는 백기사 가능성 우세
여론 의식해 갑질 등 문제 발생시 경영진 교체할수도
조 회장 대표 취임 후 대한항공 내리막길…경영능력 검증안돼
부실기업 합병으로 '승자의 저주' 반복될 거란 우려도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7위 항공사로 올라서는 대한항공을 조 회장이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따라 한진그룹의 운명이 좌우될 전망이다.
하지만 조 회장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경영권 분쟁을 의식한 산업은행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엄격한 경영평가를 예고하고 있는 데다, 항공업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구조조정 없는 합병을 장담한 한진그룹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
◆ 2017년 조 회장 대표 취임 후 대한항공 내리막길…'메가 캐리어' 운영능력 미지수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면 자산규모 40조원에 달하는 세계 7위의 초대형 항공사로 올라설 전망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해 여객과 화물 운송실적 기준으로 대한항공 19위, 아시아나항공 29위로, 양사 운송량을 단순 합산하면 세계 7위로 상승한다.
이번 빅딜이 성사된 배경에는 부실 덩어리인 아시아나항공을 신속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산업은행과, 동반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조원태 회장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두 항공사의 지배권을 조 회장에게 몰아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고 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으로 탄생할 세계 7위 항공사를 운영할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2017년부터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연결 기준 대한항공 영업이익은 2016년 1조1208억원에서 매년 감소해 2018년 6712억원으로 2년 만에 반토막났다. 지난해에는 2575억원으로 또 다시 급감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서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일부 성과를 인정받고 있지만, 분기당 3조원이 넘었던 영업이용을 절반으로 줄여 만들어낸 반쪽짜리 흑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244억원이 예상된다.
◆ 산은, 여론 의식해 7대 의무 부과했지만…백기사 논란은 지속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 역시 산업은행 입장에서 부담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 갑질 논란으로 문제를 일으킨 한진 일가에 자금을 지원해 경영권 방어를 돕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계약으로 산은은 한진칼 지분 10.7%를 확보하며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승부를 좌우할 표)를 쥐게 된다. 3자연합(46.7%)보다 지분율이 낮았던 조 회장측(41.1%)이 지분율 싸움에서 훨씬 유리해지는 만큼 산은이 조 회장의 경영권에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 역시 특혜 논란을 의식해 경영평가에 따라 경영진 해임과 교체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한진그룹에 7대 의무를 부과해 경영활동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우선 한진칼과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감시하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가 설치된다. 대한항공 경영평가를 위한 경영평가위원회도 별도로 만들어진다.
산은과 한진칼이 체결한 투자합의서에는 조원태 회장을 포함한 한진 일가의 갑질이 발생하면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한진칼은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해야 한다. 조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체와 대한항공 지분은 담보로 제공됐고, 의무조항을 어길 경우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경영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산은은 경영진 교체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산은이 사실상 조 회장측의 백기사 역할을 할 거란 시각이 우세하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멈춰 서있다. 2020.04.22 mironj19@newspim.com |
◆ 구조조정 안한다는 조 회장…노조·KCGI "이해관계자 희생 강요"
부실이 쌓인 두 회사를 합병해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 2291%로 자본잠식률이 56%에 달한다. 대한항공 역시 부채비율이 700%로 불안한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떠안을 여력이 없다. 외형상 세계 7위 항공사로 올라선다 해도 항공업황 부진 회복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은 양사를 합병해도 구조조정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고 있다. 조 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후 기자들에게 "중복 인력이 많지만 노선을 늘리고 사업을 확대하면 인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며 "양사 합병 후에도 구조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 회장이 언급한 사업 확대는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 현재 양사 모두 국제선이 기존의 95% 이상 멈춰 있어 유지비용만 매달 수천억원씩 빠져나가고 있다. IATA는 적어도 2024년 이후에나 글로벌 항공업황이 평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는 점을 감안하면 노선 확대는 당분간 요원하다. 최근 들어 글로벌 코로나19 확산이 심화하고 있어 일부 회복됐던 항공업황이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사의 부실이 심화할 우려도 있다.
산은과 국토교통부가 양사 합병의 목적으로 항공업계 구조조정을 꼽을 만큼 효율성 확대가 절실하다. 합병을 통한 조직 슬림화가 불가피한 셈이다. 산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양사의 중복 인력은 800~1000명 수준으로, 해당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해 노선 조정, 중복사업 조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 3자연합 등 이해관계자들 역시 이번 인수에 대해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 열린조종사노동조합,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등 5개 노조는 "전 세계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신규 노선 개척, 항공 서비스 질적 제고에 여유 인력을 투입한다는 목표는 현실성이 없다"며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이번 결정에 대해 양사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부와 회사 간 합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CGI 역시 "조원태 회장과 산은의 밀실야합으로, 한진칼과 대한항공 일반주주, 임직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1원의 사재출연 없이 국민 혈세로 경영권 방어는 물론 아시아나항공까지 인수하려는 시도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한항공 일반직 직원으로 구성된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이번 인수에 대해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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