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이행률 1/3에 불과…"소송해도 돈 안 줘"
해외는 징역·벌금형 등 형사처분 규정 존재
국내도 내년 5월부터 '운전면허 정지' 신청 가능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정부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신상 공개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양육비 지급 소송에서 이겨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상 공개 추진보다는 강력한 형사처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여성계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원의 지급 명령이나 감치, 채권 추심 등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들이 있지만, 의무자가 끝까지 버티면 받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 공개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양육비이행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상 공개 합법화보다 양육비 미지급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형사처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5년 출범한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양육비 이행률은 지난해 기준 36.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신상 공개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냐는 지적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양육비 문제를 일부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가면서 마치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라며 "신상 공개 등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국가가 나서서 구상권 청구 등의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희 양육비해결모임 사무국장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 공개를 한다고 해도 피해 다니면, 그 공개 내용을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다"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형사처분을 하거나, 보다 명확한 감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벌 규정은 '감치 명령'이다. 가사소송법 제68조는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이혼 배우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3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는 실정이다.
김 국장은 "감치 명령 역시 재산을 숨기면 알아낼 방법이 없다"며 "감치 가이드라인이 보다 명확해진다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양육자의 피해가 좀 더 줄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내년 5월부터 감치 명령 이후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지방경찰청장에게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여전한 한계가 있다. 운전면허 정지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형사처분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이미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벌금·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형사처분 규정이 존재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3월 발간한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형사처벌의 의의와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는 양육비 지급 불이행에 대해 경중에 따라 형사처분 규정을 두고 있다. 워싱턴주에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징역 1년 또는 벌금 5000달러(한화 약 566만원)가 가능하다. 로드아일랜드주의 경우 1만달러(한화 약 1132만원) 연체와 3개월 이상 미지급 시 최장 징역 5년까지 가능하다.
이밖에 독일은 양육비 미지급이 지속하면 최장 3년의 징역형이 가능하고, 프랑스에서는 1만5000유로(한화 약 1900만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한편 이혼 및 별거 이후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 신상을 공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 대표는 이날 명예훼손 혐의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 대표는 법정을 나와 "저의 경우 배우자와 헤어진 22살 이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28번 소송했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 다니면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도망 다니는 양육비 미지급자를 비참하게 쫓아다니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서 힘써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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