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법 시행 초기 실효성 확보해야...과태료 제재도 고려"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1. 직장인 A씨는 매일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7시쯤 퇴근한다. 공식 출퇴근 시간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다. A씨는 "퇴근 직전까지 일을 몰아주면서 시간 내에 끝내라고 한다"며 "추가 업무를 당연하게 시키면서 야근 수당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이것도 못 하냐'는 등의 나를 무시하는 상사의 언행"이라고 덧붙였다.
#2.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는 B씨는 업무 외 시간에 이뤄지는 잦은 회식이 버거울 정도다. B씨는 "업무가 워낙 많아 밀리는데다 일주일에 1~2번씩 하는 회식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특히 "회식에서 사원들에 대한 외모 평가를 할 땐 절망적이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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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이 시행 1주년을 맞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보다 강력한 처벌이나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직장갑질119가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9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4%에 달했다. 이들 중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33.0%였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별로는 모욕·명예훼손이 29.6%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당지시(26.6%) ▲업무 외 강요(26.2%) ▲폭행·폭언(17.7%) 등 순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복수응답)에 대해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는 응답이 62.9%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 중 67.1%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대응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항의했다(49.6%), 친구와 상의했다(48.2%), 회사를 그만 뒀다(32.9%) 등 답변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직장인들이 여전한 각종 '갑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7월 생활 적폐 청산을 위해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여기에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후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은 같은 해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개정안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직장 내 괴롭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등의 이유에서 일부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10월 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 의혹이 확산되면서 12월 가까스로 개정안이 통과했다.
근로기준법 제76조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이 없는 탓에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라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사실상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명문화 돼 있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먼저 회사 내에서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가해자가 사업주일 경우나 괴롭힘 행위가 중하다든지 상습성이 있다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