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최대철이 8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섰다. 안방에서 코믹하고 친숙한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그가 자격지심에 휩싸인 고독한 남자, '영웅본색'의 마크로 돌아왔다.
최대철은 현재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영웅본색'에 출연 중이다. 그가 맡은 마크는 폭력조직의 중간보스이자 큰형님 자호를 따르는 인물로 원작 홍콩영화에서는 저우룬파(주윤발)가 열연했다. 의리를 위해 목숨도 내거는 고독한 남자이자, 한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지독한 콤플렉스에 휩싸이는 비운의 캐릭터다.
"'왜그래 풍상씨' 촬영할 때 유준상 형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전화가 왔는데 '마크 역을 해주시면 안됩니까' 해서 '제가요?' 그랬어요. 전화 끊고 소리 한번 질렀죠. 리딩하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마크의 감정을 절절하게 느꼈죠. 8년 만에 돌아온 무대라 힘들긴 했어요. 같은 역할 하는 박민성이란 친구는 계속 뮤지컬을 해왔으니 조언을 많이 구했죠. 민성이랑 왕용범 연출님이 끝까지 믿어줬어요. 사실 연출님 덕에 지금 최대철의 마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최대철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1.28 pangbin@newspim.com |
앞서 왕용범 연출은 최대철의 캐스팅 비화를 직접 밝히며 만족감을 표했다. 오디션 당시 유명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겟세마네'를 부른 이유를 최대철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연출님이 그런 말까지 하셨냐"고 물으며 연신 기분좋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굉장히 좋아하는 곡이에요. 종교적인 이유로도 가사에 담긴 뜻이 좋아요. 그 노래가 너무 매력있기도 하고 제 목소리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오디션 당시 머리도 길고 펌도 한 상태였는데 생고기 같은 날 것의 느낌에서 마크를 보신 게 아닐까요? 사실 모든 배우들이 원할 수밖에 없는 역이에요. 영화가 흥행할 당시 주윤발이 선풍적인 인기였고 그 역이 인상깊게 남아있죠. 모두가 알잖아요. 배역을 따냈을 때 정말 기쁘면서도 잘 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TV를 통해서는 대중에 친숙한 최대철은 오랜만에 돌아온 무대에서는 더없이 신선한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의 마크는 왕용범 연출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뮤지컬 팬들에게도 연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는 "한번은 준상이 형이 '왜 이렇게 잘하냐'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모르겠어요. 무대 위에 올라가면 그 감정이 그냥 나와요. 상스러운 욕이 막 입에서 나와요. '병신이야?'라는 대사를 확 내뱉는데 생각하니 제 다리가 불구잖아요. 감정이 확 오니까 저절로 몰입하게 돼요. 좀 빠르게 치는 대사나, 절규하듯 소화하는 넘버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죠. 개인적으로는 43세 최대철이 살면서 경험했던 감정들을 다 쏟았어요. 진짜 힘들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성격 자체가 밝은 편이라 첫 신부터 다치기 전까지는 평상시처럼 유쾌한 텐션으로 가요. 다치고 나서는 저도 과거에 아팠던 기억들이 있어 수월했죠. 형에게 배신은 아니지만 약간의 서운함을 표현할 땐 그랬던 경험을 또 떠올리고요. 제 감수성이 연기와 맞는 것 같아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최대철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1.28 pangbin@newspim.com |
아무리 닮은 부분을 찾아내 공감하며 연기해도 마크가 쉬운 역은 아니다. 선 굵은 연기부터 섬세한 감정, 고난도 넘버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할 수 없다. 다리를 저는 몸연기, 쌍권총 액션 등을 담당하며 극의 드라마와 분위기를 살리는 중요한 캐릭터다. 2막에는 마크와 자호의 대립신이 여러 차례 플래시백으로 처리돼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2막 플래시백에서 마크가 욕설하는 신이 반복돼요. 그게 사실 이제는 조금씩 어려워졌죠. 이걸 어떡할까 늘 고민해요. 제일 좋은 방법은 똑같이 하는 게 아닌가 해요. 1막서부터 반복될 때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이 보여야 하는 장면이기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정확히 감정을 전달해야죠.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욕하고 악다구니를 쓰고선 절름발이인 스스로를 깨닫죠. 거기서 만감이 교차하고 설움이 폭발해요. 그 장면이 굉장히 슬프기도 하고요. 스스로 마크가 돼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란 생각이 들죠. 마크와 제 속이 너무 비슷해요. 그걸 알아보신 걸 보면, 연출님이 정말 대단하죠."
최대철은 자호 역의 유준상, 임태경, 민우혁과 매번 다른 호흡을 주고 받는다. 민우혁의 경우 최대철보다 어리지만 극을 볼 때만큼은 형님, 동생 같은 느낌을 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마치 '먼저 들어온 사람이 형님'이라는 조직의 룰이 적용된 듯 신선한 케미를 보여준다.
"우혁이가 정말 잘하고 멋있어요. 근데 내려오면 귀여워요. 좀 사랑스러운 애같은 면이 있는 게 한지상 자걸, 민우혁 자호죠. 준상이 형은 저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고 연기할 때 굉장히 많은 걸 담아서 줘요. 최고의 연기는 최고의 리액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리액션이 좋아보이면 연기할 게 없어요. 마크가 욕하면 자호는 그 감정을 받아서 가는 거죠. 저도 자호형이 준 감정을 그대로 갖고 가요. 참 고맙죠. 준상이 형이 또 추천해서 오디션을 봤잖아요. 덕분에 연출님, 대표님도 만났죠.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최대철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1.28 pangbin@newspim.com |
최대철은 앞으로도 왕 연출의 창작 뮤지컬을 함께 하고 싶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심지어 "천재라고 생각했다"면서 마크 역에 불러주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연출의 능력에 감탄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 부르시면 전 무조건 해요. 왕 연출님하고 평생 뮤지컬하고 싶어요. 첫 공연 끝나고 안아주시더니 '무대로 돌아온 걸 축하해' 하는데 눈물났죠. 엄청 참았어요. 연습 때 말씀이 많이 없어서 '못해서 그런가?' 눈치를 보기도 했죠. '믿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오디션 보고 뽑은 배우들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답해주셨죠. 보답이라면 잘하고 싶어요. 연습하면서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촬영을 병행했는데 시간만 나면 연습실 와서 불사르는 거죠. 드라마 스케줄 있다고 무대 연습 대충하는 건 싫었어요.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당사자들은 다 알거든요."
매체에서 주로 활동하다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오니 규칙적인 연습과 공연 스케줄로 힘도 들었다. 다만 연기하는 입장에서 본질은 같았다. 가슴으로 느끼고 그걸 표현하고, 공감을 얻는 것. 특별히 모든 요소가 극대화된 뮤지컬 무대에서 늘어난 인기를 체감한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역할로 찾아올 예정이다.
"처음엔 적응이 안됐는데 지금은 좋아요. 며칠 사이 팬클럽도 새로 생겼고요. 하하. 돌이켜보니 스스로 고맙기도 해요. 무용,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다 해봤더라고요. 결론은 하나예요. 본질은 같다는 것. 똑같이 가슴이 움직이는 거죠. 요즘은 부모 자식간, 친구간 의리 같은 게 가볍게 여겨지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 같아요. 피를 나눈 사이, 또 나누지 않은 친구들간의 따뜻함도 좀 채워주는 세상이 됐으면 해요. 부모자식 간에도 의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영웅본색'은 그런 따뜻함을 일깨우고 공감하는 작품이죠.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