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초기대응 실패로 사태 키워…정권 신뢰도 추락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빠른 정부 대응…확산 억제 뚜렷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첫 번째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20일부터 열흘이 지난 30일 현재 정부는 사실상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 조치들이 조금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고 총력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주재하는 일일 상황점검회의가 매일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구정 설 연휴를 기점으로 3·4차 확진자가 나온 이후 시중에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확진자들이 중국 우한에서 귀국 이후 지역사회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위험성은 크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과거 메르스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 적지 않아, 방역시스템이 단기간에 효과를 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울=뉴스핌] 이윤청 기자 = 지난 2018년 9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출근하고 있다. deepblue@newspim.com |
◆ 2015년 메르스 사태, 정부 대응이 문제였다
초기 컨트롤타워 부재·정보 공유 부족이 사태 키웠다
메르스는 2012년 4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발생한 감염병으로 예방 백신이나 치료약은 없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발병 원인이나 잠복기 등에 대한 정보는 있는 상태였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빠르게 확산돼 186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38명이 사망했다. 메르스의 환자와 사망자 대부분이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것을 비교해보면 이례적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5년 6월 17일 충북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을 방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이 꺾이려면 전체 환자의 절반이 나온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이 되느냐가 관건"이라며 환자 및 방문객 동선파악과 정보공개 등 삼성병원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주문하고 있다.<사진 제공=청와대> |
우리나라는 바레인에서 입국한 68세 남성이 첫 확진자로 확인된 이후 전 세계에서 메르스 환자가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한 국가가 됐다. 이 모든 것은 정부 대응의 실패가 원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였다. 메르스의 확산 이후 보건복지부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민간합동대책반을 조직하여 운영했고, 국민 안전처는 범정부 메르스대책지원본부, 즉각대응팀 TF를 구성했다. 그러나 문제는 컨트롤타워였다.
당시 범정부 메르스 관리대책본부의 법적 근거가 미약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미흡했고, 국무총리가 공석이었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실상 전면에 나섰지만, 메르스 환자는 늘어만 갔다. 첫 번째 환자와 같은 병실을 썼던 이들 등에서 병세가 드러났고, 다른 병실을 썼던 이들 중에서도 확진자가 등장했다. 이는 환자와 직접 대면을 통해서만 감염된다고 했던 정부 방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SBS '좋은 아침'에서 방송됐던 여름 면역력 특집 1탄 메르스 <사진 = 김학선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관련 첫 발언도 늦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2015년 6월 1일에 있었다. 첫 번째 환자와 접촉한 58세 여성이 사망한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메르스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해 질타했지만, 핵심은 정치적인 이슈에 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 발생 13일 만인 6월 3일에서야 메르스 관련 첫 대응 회의인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열고 "첫 번째 메르스 확진 이후 2주 간 감염자가 늘고 두 분이 사망했다"면서 "더 이상 확산이 안 되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했지만, 메르스 환자는 36명으로 늘었다.
국민 불안은 커져 갔고, 국민들의 정부 비판 여론도 커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점검을 하고 그다음에 현재의 상황, 그리고 대처 방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진단을 한 후에 그 내용을 국민께 알려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염병 대응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상황 공유과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이를 위해 정보를 공개하고, 의료기관간 협조가 이뤄지도록 지원하고 촉진했어야 했지만, 정부는 병원의 환자 치료 거부와 혼란 발생 등을 우려해 병원명의 공개를 거부해 메르스의 전국적인 확산을 야기했다.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당시 성남 시장 등 지방정부가 병원과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등 중앙과 지방정부, 의료기관 간 정보공유가 부실해 재난 대응의 효율성이 떨어진 문제도 발생했다.
결국 6월 7일 정부는 삼성서울병원 등 24개 병원명을 공개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진 상태였다. 감염병과 싸우는 1차 전선인 병원이 감염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는 등 메르스 사태는 국가적 대응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서울=뉴스핌]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의 안내로 현장 의료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0.01.28.photo@newspim.com |
◆ 메르스의 기억 때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빨라져
방역망은 허점, 1차 관문 공항·2차 관문 병원도 뚫려
제2의 메르스라고 불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 수준은 어떨까. 과거 메르스의 기억 때문인지 다소 대응이 빨라졌다.
지난 1월 20일 우한에서 입국한 35세 여성 중국인이 확진자로 판명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구정 설 연휴를 앞둔 21일 국무회의에서 "설 연휴, 국내외로 이동이 많은 시기이니 만큼 이 시기 특별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며 "지금까지 공항과 항만 검역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지역사회에서도 충분한 대응체계를 갖추도록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설 연휴인 24일 55세 남성이 두 번째 환자로, 26일 54세 남성이 세 번째 환자로, 27일 55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세에 이르자 문 대통령은 구정 설 연휴를 보낸 경남 양산에서 복귀한 직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통화해 바이러스 대응 상황을 보고 받고 격려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01.28 leehs@newspim.com |
문 대통령은 구정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청와대 3실장과 전체 수석 및 보좌관들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대책회의를 갖고 확산 방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발병지인 중국 우한시를 다녀온 3000여명에 대한 전수조사도 명령했다.
문 대통령은 공식 일정에 복귀한 28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현장 대응체계를 직접 점검하고 정부의 총력 대응태세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정부의 선제조치를 주문하는 등 과거보다 빠르게 대응했다.
청와대는 메르스 당시의 혼란도 염두에 둔 듯 사태 초기부터 컨트롤타워는 청와대라고 정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재난과 국민 안전에 대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로 이 역할을 지원하기 위해 청와대에 국가위기관리센터가 24시간 가동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동시에 위기경보의 단계별로 담당하고 있는 주무기관과 부처가 있는데 이에 맞게 청와대가 항시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국무총리는 이같은 실무적인 사항들에 대해 총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을 대비해 마스크를 쓰고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20.01.28 mironj19@newspim.com |
그러나 현 정부의 대응 역시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증상이 있을 경우 국민들이 조치하라고 언급한 질병관리본부의 콜센터 1339는 몰려드는 문의 전화 폭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증상을 가졌거나 의심될 환자가 조치를 하지 못했을 수 있다.
국내의 3·4번 확진자는 입국할 당시 아무 증상이 없어 공항 검역망을 통과한 이후, 병원의 2차 검역망에도 포착되지 않아 방역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도 있다.
4차 확신자는 입국 하루 뒤인 21일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지만, 고열 등으로 병원을 다시 방문한 25일이 돼서야 감시 대상자로 분류됐다. 이 환자가 처음 방문한 병원은 심지어 보건 당국에 이를 알리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됐다.
감염병 대응의 최대 관건인 투명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에서 아직도 원할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네 번째 확진자의 접촉자 수를 놓고도 평택시와 질병관리본부가 서로 다른 발표를 하는 등 혼선의 모습도 있는 상황이다.
dedanh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