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춘제(春節·설)를 맞이하는 방식은 우리가 어릴 적 추억 속에서 설을 쇠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춘제가 다가오면 중국인들은 붉은 종이에 검은색 또는 황금색의 '복(福)'자와 좋은 글귀가 적혀있는 춘롄(春聯)을 집 현관 밖에 붙여 한 해의 복을 기원한다. 섣달 그믐날(除夕)엔 온 가족이 모여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하고,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는 TV 프로그램인 '춘제완후이(春節晚會)'를 함께 시청한다. 노래, 마술, 곡예, 만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설 특집 프로그램인 '춘제 완후이'는 매년 춘제 시기마다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설특집 프로그램 춘제완후이[사진=바이두] |
자정이 되면 나쁜 일이나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폭죽을 터뜨리며 말 그대로 시끌벅적하게 새해를 맞이한다. 춘제마다 몇 위안부터 3,000~4,000위안(약 50~67만 원)에 달하는 다양한 가격대의 폭죽 판매액이 수 십조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폭죽 경제'라는 용어도 한때 등장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들어 대도시에선 도심 내 폭죽놀이를 금지하면서 판매량이 급감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일반 가정에선 식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수 빚은 만두를 먹는데, 이때 동전이 들어 있는 만두를 고르는 사람에겐 그 해 더 많은 재물과 복이 온다고 믿는다.
최근엔 모바일 인터넷의 보급으로 새로운 춘제 풍속도가 등장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Alibaba) 산하 모바일 결제 플랫폼인 알리페이(Alipay)에서 기획한 '지우푸'(集五福, 오복 모으기)를 꼽을 수 있다. 알리페이의 오복(五福) 카드는 애국복(愛國福),경업복(敬業福, 직업복), 우선복(友善福, 우애), 화합복(和諧福), 부강복(富強福) 총 5개로 구성돼 있다.
알리페이(Alipay) 훙바오 마케팅 '지우푸'(集五福, 오복 모으기)[사진=바이두] |
'오복 카드 모으기'는 알리페이가 매년 춘제마다 진행하는 훙바오(紅包, 세뱃돈) 이벤트로, 5개의 복(福)카드를 모으는 모든 참여자에게 무작위로 5억 위안(840억 원)의 막대한 현금을 지급하는 행사이다. 지난해엔 4억 5000만 명이 참여할 정도의 놀라운 흥행 실적을 거뒀다.
지난 2016년 이벤트 개시 후 참여자 수는 후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참여자 수는 5억 명 돌파가 유력시되면서 올해도 성공 신화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알리바바의 이벤트가 화제몰이에 성공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오복(五福) 모았어?"란 말을 인사말로 건네기도 한다. 또 중국인들은 '지우푸' 이벤트로 인한 재미있는 상황들을 SNS로 공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복' 자를 스캔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길거리마다 주변의 '복'(福)자를 스캔하거나, 알리페이의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셀럽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배우 펑사오펑(馮紹峰)도 개인 SNS에 관련 사진을 게시해 오복 카드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종종 "내가 지금 백억짜리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야!"라는 허세 섞인 농담도 들을 수 있고, 카드 하나를 얻기 위해 단체 채팅창에서 서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훙바오 이벤트인 '오복 모으기'는 불과 몇 년 만에 수십 년 간 춘제의 '아이콘'이었던 춘제완후이보다 더 많은 중국인들의 각광을 받는 설 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이에 뒤질 새라 경쟁사인 바이두, 텐센트, 더우인 등 IT 공룡들도 유사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IT 산업 경쟁이 치열한 만큼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행 가능한 대안이 없다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알리페이는 '시장 선도자의 경쟁 우위'(First Mover Advantage)를 확실하게 누리고 있다.
알리바바의 AR기능을 활용한 오복 모으기 이벤트 [사진=바이두] |
알리페이 훙바오 마케팅의 성공 요인으로 △ 알리페이의 시장 인지도와 파급력 △매우 간단한 조작 △소비자들의 자발적, 적극적 참여 △ 막대한 규모의 현금 배포 △디지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 및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폭넓은 참여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핵심적인 성공 비결은 중국인들이 오복카드 이벤트를 기업의 마케팅 수단이 아닌 최대 명절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우푸'는 함께 즐기는 '놀이'를 뛰어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비록 마윈(馬雲)은 알리바바를 떠났지만 소비 활성화를 위해 그가 주창한 '11∙11(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이제 중국만이 아닌 세계가 주목하는 쇼핑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마윈의 색깔이 짙게 느껴지는 '지우푸' 이벤트가 제 2의 광군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네모파트너즈 차이나 대표 이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