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美대사 견제에 청와대 "대북정책은 대한민국 주권"
전문가 "대북제재 강조하는 美, 한국이 공조 약화 우려"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창의적 해법'의 일환으로 우리 국민의 북한 개별관광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관광 자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아 우리 정부가 주권국가로서 결정할 수 있으나 미국의 반대, 북한의 외면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 협력을 조금 증진하면서 북미 대화를 촉진해나갈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북한 개별 관광을 언급했다. 북미·남북관계의 선순환을 강조해온 만큼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을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풀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 둘째 날인 2018년 8월 25일 오전 금강산관광특구에서 바라본 금강산 모습. |
◆ 관광 시설 개보수·현금 유입 대책 마련 필요
이에 미국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개별관광이 대북제재 위반은 아니지만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 나가지 말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주권국가이며 국익을 위해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할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의 결정을 승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추후 제재를 유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워킹그룹을 통해 운영하는 게 낫다"며 관광이 진행될 경우 반입 품목, 방북 경로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의 북한 관광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관련 시설 증축 및 개보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안보리 제재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 유엔 제재는 또 대규모 현금 유입을 금지하고 있어 우회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은 2011년 3월 이후 북한에 방문하거나 체류 경험이 있는 여행객에 전자여행허가제도(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고 있으며 방북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어 북한 개별관광으로 미국의 제재를 받을 우려도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7일 해리스 대사의 언급에 대해 "정부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조속한 북미 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남북협력 관련한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만난 이후 "기본적으로 미국은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으나 미국이 한국의 북한 개별관광에 찬성한다는 분위기는 읽기 어렵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0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다. 2020.01.03 alwaysame@newspim.com |
◆ 정부, 北 설득할 현실적 방안 모색 중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개별관광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아 미국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힐 순 없지만 전체적인 워싱턴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라며 "미국은 혹시라도 한국이 대북제재에 대한 공조를 흩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대통령의 말은 이행이 되어야 하는데 개별관광의 경우 미국과의 충분히 조율이 되지 않은 채 나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해리스 대사의 발언은 '한국이 하고 싶으면 하되 후과는 책임지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북한에 개별관광을 포함한 남북 협력 구상을 공식 제안하지 않았으나 한국이 주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모색 중이다. 북한에서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초청장을 받아오면 방북 승인을 내주는 것은 물론 북한 당국이 발행한 비자만 있어도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북한 관광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중요한 북한의 개별관광 허용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리 정부의 강한 의지와 미국의 협조가 있더라도 북한이 화답하지 않으면 관광객이 북한 땅을 밟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철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선전매체를 통해 대남 비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인의 개별관광을 승인한 적이 없고 이번에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며 "개별관광은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이득을 볼 여지가 크지 않고 북한은 한국인들이 자국에 돌아다니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은 "북한의 현재 대남정책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것이지 한국의 제의에 응하는 형식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남북 협력사업 제안이 오히려 북한의 반발심을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자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씨가 북한에 억류됐다 귀국 후 숨진 사건을 계기로 2017년부터 북한 여행을 금지하고 있으나 외국인들의 북한 관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북한과 가장 우호적인 나라이자 국경을 접한 중국은 지난해 100만명이 넘는 국민을 북한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관광객을 모은 단체관광이 많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한국의 개별관광 구상과는 직접 비교가 어렵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