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영웅본색'이 199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정수를 무대 위에 펼쳐냈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 형제애가 화려한 LED 화면과 만나 원작영화의 모든 것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영웅본색'이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국내에서도 오랜시간 사랑받은 작품인데다, 한국 순수 창작뮤지컬의 대가 왕용범 연출, 이성준 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해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송자호 역에 유준상, 임태경, 민우혁, 송자걸 역에 한지상, 박영수, 이장우, 마크 역에 최대철, 박민성까지 출연진 면면도 화려하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박민성, 유준상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영웅본색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의리와 배신이 충돌하는 홍콩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세 명의 인물의 서사를 통해 진정한 우정, 가족애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2020.01.02 pangbin@newspim.com |
◆ 2020년 한국에서…민우혁·최대철·이장우가 빚어낸 그때 그 캐릭터
원작 영화 1, 2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 뮤지컬은 자호(민우혁)와 마크(최대철)가 홍콩 폭력조직 일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부터 음모에 연루돼 쇠락하면서 시작된다. 자호가 구속되면서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경찰로 임관한 동생 자걸(이장우)은 그런 형을 원망한다. 경찰과 폭력배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제의 비극이 이 작품의 큰 줄기다. 자호를 친형처럼 따르는 마크는 그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다.
송자호 역을 연기한 민우혁은 지난해 '지킬앤하이드' '안나카레니나' '벤허'의 주역을 거쳐온 대세 배우다. 과연 폭력조직의 형님같은 단단한 몸집과 배포가 스며있는 비주얼이 매 신 설득력을 안긴다. 넘버 소화력도 훌륭하다. 원작영화에서 장국영이 참여한 주옥같은 명곡들이 흘러나온다. 서정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음악은 자호의 설움과 한에 객석을 깊게 몰입하게 한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최대철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영웅본색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의리와 배신이 충돌하는 홍콩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세 명의 인물의 서사를 통해 진정한 우정, 가족애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2020.01.02 pangbin@newspim.com |
자걸 역의 이장우는 이번이 뮤지컬 데뷔 무대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가장 많은 감정선을 거쳐가는 어려운 역을 잘 소화해냈다. 페기(제이민)와 로맨스 장면을 비롯해 친형을 제 손으로 잡아야 하는 형제의 비애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마크 역의 최대철은 인생캐릭터를 만난 듯 하다. 자호를 향한 마크의 감정은 의리를 넘어 애정으로도 느껴진다. 그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객석을 시종일관 울렸다. 선글라스, 쌍권총, 입에 문 성냥개비, 트렌치코트까지 원작의 오브제들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캐릭터로도 잘 어울린다. 그의 마크야말로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 초고화질 LED로 즐기는 '영화같은 뮤지컬'…4050 남성층 잡을까
오프닝부터 시종일관 눈을 즐겁게 하는 3중 초고화질 LED 화면은 이 작품을 가장 '영화같은' 뮤지컬로 만들어준다. 이제껏 어느 무대에서도 본 적 없는 높은 퀄리티의 영상은 실제로 홍콩 거리에 인물들이 서서 연기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실제 영화처럼 빠른 전개와 템포감을 유지할 수 있는 힘도 바로 거기서 나왔다. 다만, 2막에서 지나치게 반복되는 플래시백 장면들은 극의 긴장감을 다소 떨어뜨린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배우 민우혁, 최대철, 이장우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영웅본색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의리와 배신이 충돌하는 홍콩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세 명의 인물의 서사를 통해 진정한 우정, 가족애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담아낸 작품이다. 2020.01.02 pangbin@newspim.com |
그럼에도 '영웅본색'을 무대화한 왕용범 연출의 공은 작지 않다. 실제로 객석에는 중·장년층 관객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주요 장면이나 커튼콜 때는 남성 관객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앞서 '프랑켄슈타인' '벤허'로 대형 창작뮤지컬 흥행을 이끈 왕 연출, 이성준 음감이기에 이 정도 퀄리티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업계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항간에서는 이 작품이 지나치게 남성적인 취향과 소재의 작품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극을 빼곡히 채운 고 장국영의 명곡들과 원작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은 창작뮤지컬을 사랑하는 전통 뮤지컬팬층 역시 사로잡을 만하다. 영화를 모르는 이들도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사전에 '영웅본색' 1, 2편을 먼저 관람하면 더욱 좋다. 오는 3월 22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