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야구를 기반으로 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현역시절에는 지도자나 해설자 말고는 딱히 야구와 연관된 일들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야구인생이 길어지니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하나가 '실버 야구단'이다.
예전 고교야구에 열광했던 세대들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정년퇴직보다 더 일찍 조기에 명예퇴직 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간다. 친구들 모임에 가보면 완전히 뒷방 노인네 같다며 씁쓸해 하는 젊은 노인들이 넘친다. 고령화 시대에서 50, 60대는 노인일 수가 없다. 스포츠, 그 중에서도 아주 격렬하지도 않으면서 팀워크가 중요하고 아기자기한 작전이 있는 야구가 인생의 후반부에 즐거움과 에너지를 줄 수는 없을까?
[사진=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
젊은 선수들처럼 치고 던지고 달리기가 어려우니 50, 60대가 할 수 있는 '실버 야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중에 하나가 소프트볼 식으로 경기하거나 또는 볼을 T – 에 올려놓고 치는 방법을 구상해 보았다. 그리고 60대 이상의 실버 선수들도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사용하는 딱딱한 볼을 사용하면 다칠 염려가 있어 부상에도 위험하지 않는 소프트볼이나 아니면 특수하게 만든 고무 공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몇 주전 삼성에서 함께 선수생활 했던 함학수 선배로 부터 연락이 왔다. 8월 18일에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있는 전호야구장에서 실버 야구단의 창단 경기가 있으니 한번 시간을 내어 시구와 축사를 해 달라는 것이다. 늘 구상하던 일이라 과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실버 야구단을 운영하는지 배우고 싶었고 또 한번 구경하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승낙을 해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김포시에 등록이 된 실버 선수만 무려 45명이나 되었다. 나는 실버 선수들이 야구한다고 해서 프로야구선수들이 쓰는 볼이 아닌 소프트볼을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프로들이 쓰는 볼을 사용했다. 그리고 야구 룰도 하나도 다른 점이 없었다. 단지 프로야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 배트가 아닌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실버 선수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으신 분이 73세다. 나이가 가장 적은 분이 50대 초반이었다. 73세이신 분은 지금도 투수를 하면서 젊은 투수 못지않은 시속 103km의 공을 던지고 있었다. 두 아들도 (쌍둥이) 함께 야구 하는데 나이가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부자가 함께 야구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그리고 실버 팀 선수들 중에 엘리트야구를 경험했던 분들도 서너명 있다고 한다.
김포 실버 팀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하는 선수는 당연히 함학수선배였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선수들이 모여 이틀간 훈련하고 일요일에는 거의 자체 경기할 수 있는 인원이 모여 게임을 한다.
오늘 자체 경기 하면서 경기 룰과 운영에 대해 담당자한테 물어 보았더니 프로야구처럼 정상적인 마운드에서 던지고 야구 룰도 거의 똑 같이 하면서 경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많음을 오늘 경기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현장에서 직접 야구하는 실버 선수들에게 물어 보았다. 기존의 볼과 마운드 그리고 각 베이스 거리가 멀지 않느냐? 물었더니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해 왔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야구의 문턱을 좀 더 낮추어 젊은 층으로 구성된 사회인야구와 차별화를 하는 것이 더 많은 노령 인구들이 야구를 접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 같다. 연령대와 체력에 맞는 '실버 야구'만의 룰이 만들어 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어서 많은 실버 세대들이 직접 야구를 경험해 보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동네야구장에 꼬마들 목소리뿐만 아니라 어르신들 파이팅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이만수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이만수(61) 전 감독은 헐크파운데이션을 세워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이자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8월 대표팀 '라오J브라더스'를 이끌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현역 시절 16년(1982~1997년) 동안 삼성에서 포수로 활약한 그는 KBO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손꼽힙니다. 2013년 SK 와이번스 감독을 그만둔 뒤 국내에서는 중·고교 야구부에 피칭머신 기증,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는 야구장 건설을 주도하는 등 야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