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조용준의 콘비벤시아 스페인] 새 연재를 시작하며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찾는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다. 그저 이국적 풍광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이끌릴 수도 있다. 스페인의 음식과 플라멩코, 투우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스페인을 얼마나 알고 가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스페인이 '혼혈의 나라'라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스페인이야말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혼혈로 이뤄진 나라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들여다보는 스페인은 겉껍데기일 따름이다. 스페인 문화의 기저에 있는 '콘비벤시아', 즉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모른다면, 사실상 올바른 스페인 읽기는 실패한 것이다. 콘비벤시아 스페인. 그 기층문화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보자.

오스트리아 비엔나 태생으로 나중 프랑스 국적을 얻은 루돌프 에른스트(1854~1932)라는 화가가 있다. 전문적인 미술사가 이외에는 이 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화풍이나 특정 유파와도 거리가 멀기에, 주목을 받은 적도 거의 없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다르다. 고흐나 모네처럼 대가의 반열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독특하고 인상적인’ 화가로 나름의 대접을 한다.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는 유파로 분류도 한다. ‘오리엔탈리스트’는 굳이 번역하자면 ‘동방파’라고나 할까.

19세기 서구에서 널리 유행한 ‘오리엔탈리스트 아트(Orientalist art)’는 예술가들이 직접 근동이나 중동의 도시와 주거지에 머물며 경험한 일상을 담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에른스트가 서구 화단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885년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중동과 터키, 모로코, 이집트,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일약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에른스트의 그림 '아랍의 현자(賢者)'

일단 그림 하나를 먼저 보도록 하자. 이 작품은 에른스트가 1886년에 그린 '아랍의 현자(The Arab Sage)'라는 그림이다. 말굽 모양의 아치가 있는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에, 역시 가장 이슬람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을 배경으로 나이 많은 한 현인(賢人)이 양탄자에 앉아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을 보기만 해도 페르시아나 중동, 북아프리카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에른스트의 그림 덕택에 오늘날 우리는 19세기 중반 중동 지방과 스페인 등의 궁전 주변이나 거리 풍경을 마치 그 시대 그 장소에 가본 것처럼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그림에는 사회학적 혹은 고고학적 의미들이 내재돼 있다.

에른스트가 가진 탁월한 역량의 하나는 이국적인(동양적인) 판타지를 구현해내기 위해 그 지역만의 토속 공예품을 오브제로 잘 결합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알람브라 궁전 모습을 바탕으로 상상한 것이 분명한 무어 풍 궁전에 개인적으로 모은 수집품을 반복적으로 장식했다.

에른스트의 그림 '저녁 기도'

에른스트의 그림 하나를 더 보도록 하자. '저녁 기도'라는 이 그림은 매우 독특한 기둥이 늘어선 사원에서 이슬람교도가 기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이 으레 그렇듯 벽의 하단부는 타일로 장식돼 있다. 이 그림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기둥이다.

이슬람 건축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인 말굽 모양 아치를 이루는 기둥은 무데하르(Mudejar) 양식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다.

그럼 무데하르 양식이란 어떤 것인가. 그게 바로 앞으로 계속 반복돼 나올 주제의 하나다. 먼저 간단히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의 가장 전형적인 성당 건축 양식, 즉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에 이슬람 무어 양식이 결합된 혼혈이 바로 무데하르다. 이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계속 얘기할 것이니 여기서는 이만 하도록 하자.

위의 그림 속 배경은 지금도 실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슬람 마스지드(모스크)가 아니라 가톨릭 성당에서다. 마드리드 인근 톨레도(Toledo)에 있는 ‘순결한 성모 마리아(Santa Maria La Blanca) 성당’이 그 모델이다. 그림 속 배경과 이 성당의 기둥, 벽장식 등은 조금도 어김없이 똑같다.

톨레도(Toledo)에 있는 ‘순결한 산타 마리아 성당’의 독특한 기둥과 장식 [사진=조용준 작가]

그러나 에른스트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이미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완성돼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고 한참 지난 다음이다. 따라서 이처럼 터번을 두른 아랍인들이 이 예배당에서 알라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봤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그가 톨레도에서 보고 그린 예배당 스케치에 허구를 덧붙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에른스트의 상상 속 장면을 위해 무데하르 양식의 톨레도 한 예배당 모습을 빌려왔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해진 것은 ‘순결한 성모 마리아 성당’ 건축의 뿌리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거점을 뒀던 무어인들의 알모하드(Almohad) 왕조에서 뻗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트에 대한 낭만적 경향의 옹호자로서의 화가들은 유진 드라크루와(1798~1863)를 비롯해 장 레옹 제롬(1824~1904), 세오도르 샤세리오(1819~1856),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캥(1803~1860), 윌리엄 홀맨 헌트(1827~1910) 등이 있다. 또한 이런 경향은 20세기 화가 르노아르, 마티스, 클레, 칸딘스키 등의 작품에도 이어졌다. 특히 마티스는 하렘의 여인을 대상으로 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 이들 오리엔탈리스트 화가들의 오리엔트에 대한 이국취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촉발시킨 곳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같은 유럽에 있어 가장 가기 쉬운 스페인이었다. 프랑스와 바로 붙어 있지만 서유럽과는 풍광이 너무나 다른, 무려 700년 이상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는 동안 독특하고 독창적이며 단절된 진화를 해온 ‘유럽 속의 갈라파고스 섬’과도 같은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와 세비야(Seville), 코르도바(Cordoba)의 이슬람 왕궁을 보면서 문화적, 감성적 충격을 받은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전해진 이슬람 문화의 뿌리를 찾아 북아프리카와 중동, 터키 등지로 여행 혹은 상상력의 범위를 넓혔다.

에른스트의 오리엔트 첫 여행도 바로 1885년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것은 스페인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외교관이자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1783~1859)이 에른스트보다 54년 앞선 1831년 세비야에서 노새를 타고 그라나다를 향해 여행을 떠난 것과 비슷하다. 19세기 서구에서 열병처럼 번진 알람브라에 대한 전설은 ‘버려진 폐허’에서 ‘오리엔탈의 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찬양해 복원 여론을 형성한 워싱턴 어빙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스페인 무데하르라고 하는 건축 양식, 그리고 ‘콘비벤시아(관용)’라고 하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혼혈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될 것이다. 톨레도의 ‘순결한 성모 마리아 성당’ 역시 이러한 혼혈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걸작이다.

무데하르와 콘비벤시아는 이제껏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스페인’을 알려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을 찾고 있지만, 스페인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우디와 투우, 빠에야와 타파스, 플라멩코, 고야와 벨라스케즈를 안다고 스페인을 아는 것은 아니다. 자, 이제부터 스페인 ‘일상의 고고학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조용준 digibobos@hanmail.net

작가 겸 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전 동아일보 기자, <주간동아> 편집장. <유럽 도자기 여행> 시리즈,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등 다수 저서 출간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정부, 故 윤석화 문화훈장 추서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 최휘영 장관은 19일 오후 5시 30분에 고(故) 윤석화(향년 69세) 빈소를 방문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조문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고(故) 윤석화의 빈소가 19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은 2022년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을 이어 왔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 2025.12.19 photo@newspim.com 아울러 정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로서 오랜 기간 한국 공연예술계 발전에 기여한 배우 윤석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한다. 고 윤석화는 1975년에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이후 연극 뿐 아니라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마스터클래스', 뮤지컬 '명성황후'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폭 넓은 연기 영역을 보여주었고, 다수의 연극상·백상예술대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평가받아 왔다. 배우 활동과 더불어 연출가, 설치극장 '정미소' 대표로서도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여 연극계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했다. jyyang@newspim.com 2025-12-19 22:20
사진
관가 '이재명 사무관' 경계령 [세종=뉴스핌] 나병주 기자 = 정부 업무보고에서 보여준 이재명 대통령의 '예리하고 꼼꼼한' 질문이 관가를 잔뜩 긴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담당사무관이 아니라면 알기가 쉽지 않은 내용까지 놓치지 않는 예리함에 관가에서는 '이재명 사무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예상 못한 '정원' 질문에 기후부 '멘붕'…장관·국장 모두 답변 못해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오후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왜 기후부는 정원이 2930명인데 현원이 2973명으로 초과됐느냐"는 '깜짝' 질문으로 모두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김성환 장관은 물론 기후부 간부들 모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20초가량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이 대통령이 담당국장이 누구냐며 재차 묻자 그제야 정책기획관(국장)이 "자세히 확인은 못 했지만 긴급하게 필요한 것에 대해 추가 고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업무보고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지만, 기후부는 그런 상황이 없었는데 정원 초과된 게 이상하다. 원래 환경부 시절부터 추가가 됐는지, 아니면 기후부로 전환되면서 추가된 건지 답해달라"며 재차 물었습니다. 이에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환경부에서 추가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모호하게 답하자, 이 대통령은 "추정으로 답하지 말라"며 확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었습니다. <뉴스핌>이 확인한 결과, 이유는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인원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육아휴직자 51명을 현원에 포함하는 실수를 저질러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결국 현재 기후부 현원은 2922명으로 정원보다 8명이 적어 오히려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다행히 상황파악 후 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이 대통령에게 보고해 오해는 풀었다고 하네요. ◆ 李대통령 예리한 질문에 관가 긴장…'이재명 사무관' 별명 생겨 이번 해프닝에 대해 기후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탈탄소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한방' 얻어맞은 셈이죠. 사실 인원현황은 기후부 업무보고 1페이지에 제일 처음 나와 있는 내용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놓치지 않고 꼼꼼히 살펴본 거죠. 기후부 관계자는 "사실 이번 건은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도 놓칠 수 있는 내용이다"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깜짝 놀랐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어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7일 오후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년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스핌TV 갈무리] 2025.12.17 dream@newspim.com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확인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이재명 사무관'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실무자인 사무관 같은 대통령의 꼼꼼함에 관가는 앞으로 있을 보고에 대해 부담감이 커졌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꼼꼼한 모습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A 씨는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지적하기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지켜보는 만큼 현안에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최근 고(故) 김용균 씨 때와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한 서부발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적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 대통령이 서부발전 사장에게 질문한 시간은 답변을 합쳐도 약 10초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 관가에는 '이재명 사무관'의 꼼꼼함을 경계하라는 '경계령'이 내려졌습니다. 작은 숫자 하나도 놓치지 않는 그의 꼼꼼함이 국정 운영의 새로운 기준이 될지, 아니면 과도한 긴장으로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lahbj11@newspim.com 2025-12-19 11:4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