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호 기자 = 편의점의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규약이 시행된 첫 분기 편의점 5개사의 점포 순증수가 급감했다.
아직 거리 제한 확대 규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이지만 이를 의식한 편의점 본사들이 몸 사리기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불안한 업황으로 출점 수요가 감소하고 부진 점포의 폐점이 가속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5개사의 올해 1분기 점포 순증수는 582개로 전년동기(915개) 대비 36.4%나 감소했다. 그나마 업계 선두업체인 CU와 GS25가 감소폭을 최소화하며 외형 성장을 이어갔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순증수가 지난해 대비 반토막 났다.
편의점 CU의 올 1분기 순증수는 173개로 지난해 1분기 232개와 비교해 증가폭이 25.4% 줄었다. 그나마 편의점 5사 중에선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 1월만 해도 23개 순증에 그쳤지만, 본격적인 창업 시즌인 3월 들어 점포수가 105개 늘어나며 하락폭을 최소화했다. 선두 업체인 만큼 예비 창업자의 수요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순증수는 출점 점포수에서 폐점수를 뺀 수치로 편의점의 외형 성장세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GS25 역시 지난 1분기 점포 순증수는 전년동기(206개) 대비 25.7% 줄어든 153개로 CU와 비슷한 수준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CU와 GS25 양사 모두 두 자릿수의 최저임금이 인상이 시행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나름 선방한 수치다.
지난해 1분기에는 16.4% 인상된 최저임금이 처음 적용되면서 인건비 우려 여파에 출점 수요가 급감한 바 있다. CU의 경우 작년 1분기 순증수(232개)가 전년 동기대비 44.2% 감소했고, 같은 기간 GS25도 순증수가 1년전 보다 58.3% 급감하는 타격을 입었다.
편의점 CU와 GS25[사진=각 사] |
그러나 이들 선두업체와 달리 세븐일레븐·이마트24·미니스톱 등 편의점 후순위 업체들은 같은 기간 순증수가 크게 줄어들며 대조를 이뤘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올해 1분기 순증수가 62개로 전년동기(140개) 대비 55.7%나 줄면서 순증수 감소폭이 가장 컸다. 1월에는 순증 점포수가 3개에 그치며 얼어붙은 업황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후발주자로 가장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펼치던 이마트24도 자율규약에 따른 출점 제한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마트24의 지난 1분기 점포 순증수는 171개로 지난해 1분기(297개) 대비 42.4% 감소했다.
이는 이마트24로 리브랜딩하기 이전인 2017년 1분기 위드미 당시 순증수 208개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손익분기점 달성을 위해 연간 1000개 수준의 공격적 출점 전략을 세운 이마트24마저도 점포수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것 자체가 얼어붙은 편의점 시장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특히 이마트24의 경우 출점수도 줄었지만 폐점 점포가 늘어난 영향도 크다. 이마트24의 지난 1분기 폐점수는 79개로 전년 동기대비 49%나 급증했다. 부진한 성장세로 지난해 연말 매각설에 휘말렸던 미니스톱도 올해 1분기 순증수는 전년 동기대비 42.5% 감소한 23개에 그쳤다.
이 같은 편의점 업계 전반의 점포 성장률 둔화세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가맹점의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가맹본사들의 출점 기준 강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올해부터 시행된 업계 자율규약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편의점업계의 자율규약에는 출점 문턱을 높이고 부진한 점포는 퇴로를 열어주는 내용이 담겼다. 핵심 쟁점인 점포 과밀화 문제는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제한 규정을 준용해 편의점 간 100m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해소하기로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조윤성 한국편의점산업협회장 등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편의점업계 '근거리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스핌] |
이에 따라 서울시는 각 자치구별로 담배소매인 지정거리를 기존 50m에서 100m로 늘리는 규칙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다만 현재 담배 지정거리를 확대하는 규칙개정을 완료하고 시행 중인 자치구는 기존의 서초구를 포함해 도봉·강북·용산구 등 4곳에 그친다.
나머지 21개의 자치구는 아직 시행 이전이지만 늦어도 올 상반기 내에는 규칙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100m 거리제한 규제가 적용되면 점포 증가율이 더욱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는 출점 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점포수 증가세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편의점 시장의 매출 성장률도 크게 꺾였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오던 편의점 시장은 지난해 8.5% 성장에 그치며 처음으로 한 자릿수로 회귀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1월 6.6%, 2월 3.7%로 성장세가 더욱 쪼그라들었다.
편의점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규약이 시행되면서 아무래도 출점 기준이 강화됐고 그 여파가 1분기 성적표에도 반영됐다”며 “물론 가맹점주 보호를 위해 근접출점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이번에 봤듯이 진입문턱이 높아지면서 후발주자와 선두 사업자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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