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지옥...60세 이후에도 챙겨야 할 백수·미혼 자녀들"
정부 노인 일자리...전문성 살릴 수 없는 소일거리 뿐
전문가들 "대상 맞춤형 실버 정책 실시해야...홍보도 중요"
[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편집자] 지구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유엔은 2016년 인구보고서에서 “인류가 직면한 고령화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기”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불과 18년 만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인구절벽이 심한 일본보다 6년이나 빠르지만 노인 복지나 사회적 관심은 훨씬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잖다. 특히 1인 가구가 빠르게 늘면서 ‘노인빈곤’ ‘고독사’ 같은 우울한 단어들이 청년들까지 짓누르고 있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대안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중부캠퍼스에서 50·60 세대가 IT 관련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시50플러스재단] |
“공무원이 아니고서야, 고액 연금 받지 않는 실버에게 정년은 지옥과 같아요.”
29년 몸담은 유명 건설회사를 퇴직한 뒤 건축 감리회사에서 8년째 근무하는 정 모(남·62)씨. 노인들의 일 이야기가 나오자 “한창 일할 나이인데 실력 발휘할 기회가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정씨는 “특히나 건설 분야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경험과 대처 능력, 판단력 등이 우선시 되는 직종인데,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쌓아왔던 전문성이 사장된다는 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한국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은퇴한 실버들의 일자리 고민이 커지고 있다. ‘베이비부머’ ‘신노년’ 등으로 일컬어지는 50·60세대는 한창 나이인데 일할 데가 마땅찮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2017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50~64세 인구는 219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시 총 인구의 약 22%를 차지하는 셈이다.
정씨는 “요새는 60세 이후에도 자녀의 교육, 결혼 문제로 돈 나갈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은 퇴직해야 하는 상황인데 집엔 백수 아들에 시집 안 간 딸이 있다”며 “적어도 65세까진 고용을 보장해줘야 가정도 서서히 안정을 찾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도 각종 노인 일자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실버들의 전문성을 살릴 수 없는 소일거리가 대부분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정부 산하 기관 관계자는 “일자리 수가 적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향후 정부에서도 일자리 수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며, 이를 위해선 노년층 노동력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시니어를 고용하려는 민간 기업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수영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장은 “지금 실버 세대들은 고학력에 70% 이상이 중산층이란 자의식을 갖고 있다”며 “이 분들의 역량과 자원을 사회가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취약 계층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인지 자본이 될 것인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년층의 구직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로 수명연장과 생애주기 변화를 꼽았다. 과거엔 60세 전후로 은퇴해 10년 정도 살다가 삶을 마감했는데 지금은 평균 수명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강 본부장은 “지금은 퇴직 평균 연령은 50대 초반으로 빨라졌고, 실질적으로 모든 경제 활동에서 은퇴하는 시기는 70대 초반으로 늦춰졌다”며 “나이들면 젊을 때와 달리 질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이 시기는 ‘죽음의 계곡’과 같다”고 말했다.
노년층의 노하우를 적극 살릴 수 있도록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선 일자리 연계를 비롯해 상담·교육과 문화 인프라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의 경우 ‘보람 일자리’와 함께 ‘50플러스 펠로우십’ 등을 핵심적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50플러스 펠로우십’은 실버 구직자의 전문성을 살려 협동조합, 비영리단체에 인턴십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강 본부장은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으니 인턴십은 아니다"며 "이걸 기반으로 해당 기관에 취업이 되거나 구직자가 직접 창업을 하는 식이다. 기존 시장과 충돌을 피하면서 최대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가 ‘대상 맞춤형 실버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 본부장은 “여전히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에 풀타임으로 일을 해야 하는 계층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분들을 위해서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정부 산하 기관에 정보가 산재돼 있는데 바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며 “또 그 정보를 적극적으로 실버 세대에게 노출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강 본부장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퇴직 연령을 보장해야 한다”며 “법적인 퇴직 연령을 채우는 인구는 전체 10%도 안 된다. 그마저도 공무원에 국한돼 있다”고 말했다. 연금 수급에 이르는 기간을 최대한으로 줄여, ‘죽음의 계곡’ 시기를 단축 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km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