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감독 관계 아니어도, 업계·직장 선후배 추행에 대해 처벌 가능
나 의원 "우월적 경제·사회적 지위를 악용한 성범죄 근절이 목표"
[뉴스핌=김선엽 기자] # 지난 6일 MBC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영화감독 김기덕과 배우 조재현의 성범죄 의혹을 다뤘다. 인터뷰에 응한 여배우 A씨는 “조재현도 숙소 방문을 계속 두드렸고, 결국 들어와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며 “조재현 매니저도 성폭행을 시도해 옷이 찢겨 도망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김기덕 감독에게도 피해를 입었다. 그에 따르면 김 감독은 다음 작품 출연을 제안하며 관계를 지속할 것을 종용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의 증언이 사실일 경우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은 처벌을 받을까. 김 감독과 A씨의 경우 배우와 감독으로서 업무·고용 관계가 명확해 '위계에 의한 추행'이 인정될 수 있지만 배우 조재현은 A씨와 선후배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배우 조씨의 경우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씨가 영화계 선배로서 업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강압에 의한 간음이나 추행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배우 조재현 '크로스'에서 12회까지 출연한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이처럼 최근 불거진 문화 예술계의 미투 사례를 보면 업무·고용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은 시인이 술자리에서 문화계 후배를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반 직장에서도 거래처 직원이나 다른 부서 후배를 상대로 갑질형 성추행을 범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업계의 한 변호사는 "형법상 강간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분명히 있어야 하고, 그게 안되면 위력·위계가 성립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며 "(지휘·감독 관계를 요구하는) 현행법에서는 그 동안 위력·위계가 성립하지 않아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별법)'과 '형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형법 개정안은 "경제·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하여 이익의 제공이나 약속 또는 불이익의 위협으로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아울러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동일한 경우에 대해 추행에 대해서 처벌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왼쪽부터) 시인 고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출처=뉴시스> |
나 의원은 제안이유를 통해 "경제·사회적 지위의 우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일반 성폭력 범죄에 비해,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고 피해가 장기간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월적 경제·사회적 지위를 악용한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 처벌의 실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실 관계자는 "고은 작가와 같이 특정한 직책을 갖지 않을 때도 사회적 원로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래사람에게 성추행을 한 경우 이 법을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